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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화전쟁에 동원된 ‘낙태의 자유’

입력
2019.05.17 18:00
수정
2019.05.17 18: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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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 롬니 전 공화당 대선후보가 친구와 마주 앉아 얘기를 하다가 자네는 왜 민주당원인가라고 물었다. 롬니 입장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합리적 판단을 내릴 줄 알며 재정 능력까지 갖춘 친구는 당연히 공화당원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공화당원이 아닌 이유에 대해 친구는 가장 먼저 낙태, 그리고 총기와 공화당의 종교적 색채 문제를 들었다고 롬니는 책 ‘사과는 없다’에서 소개했다. 이처럼 낙태는 미국에서 총기, 성적 소수자, 이민 이슈와 함께 선호 정당 색깔까지 바꾸는 문화 전쟁의 큰 축이다.

□ 낙태 문제는 늘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생명 존중 차원으로 볼지, 아니면 개인의 자유권으로 다룰지의 문제다. 윤리적 선악의 문제이자 동시에 합법과 불법의 문제인 셈이다.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처음으로 개인 자유의 문제로 보고, 여성이 자신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당시만 해도 낙태가 유권자들의 선호 정당까지 바꿀 사안일지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90년대에 전개된 문화 전쟁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 낙태 문제도 진영 논리에 갇혀 정치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데 동원됐고,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입법 도발’도 계속됐다. 2001년 이후에만 660건의 이런저런 낙태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집계했다. 빈부 격차 등 시급한 사회문제에 가려 잠잠하던 낙태 문제는 최근 재부상한 모습이다. 보수적인 레드 스테이트들이 앞다퉈 제한법을 만들면서 임신 6주 정도인 태아 심장이 뛸 때부터 낙태를 불허하는 법이 4개 주에서 입법화했고 10개 주는 추진 중이다.

□ 앨라배마에서는 성폭행, 근친상간 임신의 낙태까지 막고, 시술 의사를 99년 수감하는 법까지 등장했다. ’앨라배마가 (보수가 전통인) 미시시피를 (진보적인) 매사추세츠로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움직임의 큰 배경은 대법원 구성의 변화다. 작년 10월 낙태 찬성자인 앤서니 케네디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낙태 회의론자인 브렛 캐너노가 앉으면서, 보수 대 진보 대법관은 5대 4로 기울었다. 수치상 판결 번복이 가능해지면서 낙태 자유는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져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제2의 문화 전쟁이 시작된 모습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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