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과열지구 아파트 청약의 예비당첨자 비율을 대폭 늘리는 ‘주택 청약제도 개편안’이 20일부터 시행됐다. ‘현금부자의 놀이터’란 비판을 받았던 무순위 청약을 줄이고, 실수요자에게 더 많은 청약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에선 높은 분양가 탓에 대출 완화 등의 추가 조치가 없으면 실수요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 한국일보] 아파트 평균 분양가격 추이- 송정근 기자
◇500%로 높아지는 예비당첨 비율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20일부터 서울, 경기 과천ㆍ분당ㆍ광명ㆍ하남, 대구 수성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입주자모집공고 승인을 받는 단지부터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공급물량의 80%에서 500%(5배수)로 늘렸다.

그간 가령 100가구 모집 단지의 예비당첨자 수는 80명(80%)이었다. 1,2순위 당첨자와 예비당첨자 80명이 계약을 포기하거나 부적격으로 취소되면, 남은 물량은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일부터 예비당첨자가 500명(500%)이 돼 무순위 청약까지 가지 않고 예비당첨자 선에서 계약이 끝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정부가 이런 제도 개선에 나선 건, 이른바 ‘줍줍 현상(줍고 또 줍는다는 의미)’이 늘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고강도 대출 규제로 1순위에 당첨되고도 계약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청약제도로 인한 부적격 당첨 물량이 늘어나면서 이를 현금 동원력이 있는 다주택자가 주워 담아 무주택 실거주자 중심의 청약제도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실제 연초 분양한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은 1순위 평균 경쟁률이 11대 1이나 됐지만, 일반공급분의 70%가 미계약돼 결국 무순위 청약 대상이 됐다. 3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분양된 ‘호반써밋 자양(청약 경쟁률 10.96대 1)’ 역시 일반 공급 30채 가운데 22채(73.3%)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다.

◇고분양가, 복잡한 청약제도에 발목

하지만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혜택이 돌아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정답’을 제시했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분양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말 기준 서울 아파트 1㎡당 평균 분양가격(778만4,000원)은 1년 전(작년 4월 684만1,000원)보다 13.8% 급등했다. 이는 전국 평균(7.21%)의 두 배 수준이다.

반면 대출 길은 사실상 막힌 상태다. 무주택자가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되어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분양가 9억원을 넘는 단지는 중도금 대출도 어려워 예비당첨자 수를 늘려도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대형 건설사가 경기 안양시 아파트 당첨자와 예비당첨자를 대상으로 계약을 마친 결과 29.4%(194명)가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이 중 분양가 부담을 이유로 꼽은 이들이 30.4%(59명)로 가장 많았다. 이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050만원이었다. 대출규제 때문에 계약을 포기했다는 답변도 21.6%(42명)에 달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분양가가 높아지고 있어 중도금 대출 없이 새 아파트를 분양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기 무주택자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등에 한해 대출요건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017년 이후 2년간 10차례나 개정될 정도로 복잡한 청약제도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는 청약자 본인이 부적격 여부를 검증해야 하는 구조인데, 이 과정에서 무주택기간을 잘못 계산하거나 바뀐 청약제도를 인지하지 못해 당첨이 취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8월까지 5년간 아파트 부적격 당첨건수(13만9,681건) 가운데, 청약가점과 무주택ㆍ세대주 등을 잘못 기입한 경우가 46.3%로 가장 많았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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