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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자식은 ‘내 것’이 아니다

입력
2019.05.17 18:00
수정
2019.05.24 11: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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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극단적 선택과 ‘스카이캐슬’의 행태

‘자식에 대한 비뚤어진 소유의식’ 원인 같아

‘각자도생 가족주의’ 극복하고 안전망 갖춰야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포스터.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포스터.

이해가 안 됐다. 작은 돈은 아니지만 빚 7,000만원 때문에 아빠 손모(35)씨와 엄마(35) 아들(4) 딸(2) 등 일가족 4명이 하필 어린이날 렌터카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차라리 믿고 싶지 않았다. 손씨는 한 달 전 부인과 동시에 직장을 잃은 뒤 생활고를 비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파산을 신청해 매월 80만원씩을 갚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생때 같은 젊은 부모가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라며 안타까우면서 ‘아무리 그래도 애들까지 데려가면 어떡하나‘라고 화도 났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날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삶이 끝난 아이들을 떠올리면 한없이 먹먹해졌다.

미안함에 시흥경찰서로 장례 절차 등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의 설명은 전해진 것과는 다소 차이가 났다. 손씨 월급 통장에서 80만원씩 나간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빚이 얼마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손씨가 실직을 했다는 보도도 사실과 달랐다. 5년 전부터 주물공장에서 일해 온 손씨는 한 달 전 ‘하루 쉬겠다’고 퇴근한 뒤 한 달째 ‘무단 결근’ 상태였다. 적어도 손씨가 직장에서 갑자기 잘린 건 아니란 얘기다. 손씨의 월급은 세전 기준 250만원이었다. 아내도 콜센터에서 일한 만큼 최악일 정도로 궁핍한 것은 아니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밝힌 수 없다고 한 수사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소심한 성격과 다른 갈등 등도 중첩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말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아이들의 목숨까지 앗아간 데 대한 면죄부를 줄 순 없다. 경찰 관계자도 “자신이 아니면 돌봐 줄 이가 없으니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던 것 같다”며 “아이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부모의 부속물로 여긴 듯하다”고 지적했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생활고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위안은 안 된다. 아이들은 사회가 키워줄 것이란 믿음과 실제로 그런 안전망이 있었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적잖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손씨처럼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삐뚤어진 소유의식이 우리 사회에 꽤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 자식은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은 무한한 힘의 원천도 됐다. 그렇게 대한민국 가장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했고, 가족 단위로 각자도생하며 ‘한강의 기적’도 이뤘다. 양육과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던 때 가족은 모든 책임을 떠 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관습도 고착됐다. 봉건시대 오랜 가부장제 문화의 폐악이 유독 한국 사회에선 극복되긴커녕 더 커졌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은 아동 학대와 체벌로도 이어졌다. 아동 학대의 극한이 바로 직계 비속 살해 후 자살이다. 우리나라의 가족 살해가 전체 살인 사건의 5%로, 영국(1%)이나 미국(2%)보다 높은 이유다. 아이들은 동의한 적도 없는데 ‘동반 자살’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표현이다.

올초 드라마 ‘스카이캐슬’도 우리 사회의 자식에 대한 왜곡된 소유 의식과 그 폐해를 보여줬다. 부모들이 아이의 명문대 진학에 목매는 것은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고 부모의 훈장이 돼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족 전체가 모든 것을 걸고, 뜻대로 안 되면 부모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통곡한다. 자식은 부모나 가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데 동원되는 존재일 뿐이다.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 일가의 갑질이 끊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가족의 범위가 회사로 확장돼 직원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자식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몸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더 이상 일가족 참사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적 육아에 대한 국가안전망을 구축하고,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강한 가족주의에 대해 고민해볼 때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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