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과감한 재정정책’ 강조한 날, 다른 목소리 담은 보고서 내
“일시적 경기부양용 재정 투입보다 규제 완화 등 제도개혁 우선” 주문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부진한 경기를 되살릴 재정 확대 투입 논의가 최근 정부와 여당 사이에서 활발한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6일 “단기 재정 투입으로는 구조적인 저성장세를 탈출하기 어렵다”는 ‘직언’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마침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 통과를 촉구하며 “재정 확대” 방침을 강조한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목소리다.
문 대통령은 이날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한껏 강조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나라 곳간을 채우는 데 중점을 뒀지만, 지금은 양극화,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며 “재정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국회의 조속한 정상화와 추경안 신속 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428조8,000억(전년 대비 7% 증가), 올해 469조6,000억원(9.5% 증가) 등으로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고 3년 연속 추경까지 편성했는데,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KDI 보고서의 메시지는 대통령과 사뭇 결이 달랐다. 권규호 연구위원이 작성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장기전망’ 보고서는 우선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하락 추세를 우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생산성(총요소생산성)이 차지하는 기여도는 2001~2010년 연평균 성장률(4.4%) 중 1.6%포인트였지만 2011~2018년(3.0%)에는 0.7%포인트로 뚝 떨어졌다. 생산성이 낮아진 만큼 평균 경제성장률 하락도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지속적인 제도 혁신으로 경제에 대한 생산성 기여도가 높아질(2010년대 0.7%포인트→2020년대 1.2%포인트) 경우 2020년대 한국의 성장률은 연평균 2.4%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20년대 성장률은 1.7%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최근 수년간 지속되는 저성장 국면은 세계경제 둔화 같은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갈수록 생산성이 낮아지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이를 탈피하려면 단순한 ‘경기 살리기’용 재정 확대보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업규제 △노동규제 △금융제도 △국제무역 자유도 등의 제도 개혁이 더 절실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 연구위원은 “1년 정도의 단기간만 보면, 재정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까지 부정하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이런 정책이 반복될 경우, 구조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보다는 재정에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숱한 재정확대 정책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당정은 재정 확대의 필요성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당장의 경기 대응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경기 살리기용 예산이 대부분이다. 실제 이번 추경안 역시 6조7,000억원의 전체 예산 중 경기대응이 4조5,000억원, 미세먼지 대응이 2조2,000억원으로 경기 활성화 목적이 강하다.
전문가들도 현 정부의 재정투입 일변도 정책에 우려를 표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본예산을 대폭 늘려 편성하고도 3년 연속 추경을 하는 등 이번 정부가 습관적으로 재정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대는 분명 필요하나, 현 정부의 재정운용은 생산적 투자라기보단 ‘돈 뿌리기’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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