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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무슬림형제단은 테러조직인가… 흔들리는 아랍권 정치 지형

입력
2019.05.17 18:00
수정
2019.05.19 14: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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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법원 내 수감시설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바디에(76) 의장이 무슬림형제단 탄압 정책을 펴고 있는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3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당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뒤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정했고, 바디에 의장은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017년 11월 종신형이 확정됐다. 카이로=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5월 3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법원 내 수감시설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바디에(76) 의장이 무슬림형제단 탄압 정책을 펴고 있는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3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당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뒤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정했고, 바디에 의장은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017년 11월 종신형이 확정됐다. 카이로=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미국 백악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슬림형제단을 ‘외국 테러리스트 조직(FTO)’으로 지정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사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지 3주 만이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2년 6월 이집트 사상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이하 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이듬해 7월 쿠데타로 무너뜨린 통치자다. 그리고 2개월 후, 형제단은 또다시 불법 조직이 됐다. 1928년 이집트에서 출범한 형제단은 세계 최대 이슬람 운동 단체지만, 창설 이래 서너 차례에 걸쳐 총 30여년간 불법 조직으로 규정됐었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형제단도 성명을 냈다. 여기엔 “미 정부가 스스로 천명한 원칙과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 대신, 중동의 억압적 독재자에 굴복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중동 정치 평론가 마르완 비샤라도 알자지라에 기고한 칼럼에서 “트럼프는 아랍의 독재자들로부터 대(對)중동 정책 관련 지시를 받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의 맥락상 ‘아랍의 독재자들’은 엘시시 대통령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무함마드 빈자이드 알나흐얀(MBZ) 왕세제 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MBS와 MBZ는 ‘아랍의 봄’ 이후 분쟁에 휩싸인 중동 정세를 뒤흔드는 권력 실세들로 통한다. 2013년 이집트 엘시시의 쿠데타도 이들의 지원으로 가능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비샤라 평론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을 “정치적 이슬람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적 이슬람’은 오늘날 형제단 계열 운동 혹은 정당들의 정체성이다. 이들을 지칭하는 대체용어로도 종종 이용된다. 물론 범이슬람 운동인 히즈붓 타흐리르처럼 표면적으로 비폭력을 표방하는 살라피스트 운동도 ‘정치적 이슬람’의 또 다른 카테고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동ㆍ아랍권에서 보다 대중적인 ‘정치적 이슬람’은 역시 형제단이다. 이들은 이 지역 모든 나라에 포진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엘시시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미국 내에서도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엘시시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미국 내에서도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불법화됐다거나 전쟁 시국이 아닌 한, 대부분의 형제단 계열 정당들은 민주적 선거 과정에 동참하며 주류 정치권에서 활동 중이다. 의회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이들의 목표는 여느 정당과 다르지 않다. 즉, 선거 절차를 거쳐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다만 선거 과정에 대해 그들은 ‘이슬람 정치를 완성해 가는 점진적 절차’로 간주한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중동정치 연구원인 코트니 프리어는 ‘미국의 무슬림형제단 금지가 가져올 지역적 여파’라는 제목의 글에서 바로 이 ‘점진적 전략’이 “민주주의와 호환 가능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각국의 형제단 조직들마다 어젠다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개별 조직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이뤄지는 ‘무슬림형제단=테러리스트’ 지정은 결국 ‘사상의 금지’와 다를 바 없다고도 주장했다. 쿠웨이트 정치 연구자인 프리어는 “트럼프의 아랍 동맹들은 형제단이 테러리즘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각국의) 국내 정치에 변화를 모색하려는 형제단의 노력을 짓누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형제단은 ‘이슬람이 해결책’이라는 구호 정도로만 묶일 뿐, 지역 및 나라마다 다른 토대와 다른 역사로 다면화돼 있다. 범이슬람 운동을 추구하는 히즈붓 타흐리르, 글로벌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인 알카에다 등과는 달리, ‘민족 개념에 기반한 국가(nation state)’를 인정하고 있다. 현재 형제단 계열 정당이 의회에 진출한 중동의 국가는 알제리와 바레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 10곳에 이른다. 형제단을 테러 조직으로 공식화할 경우, 이 나라들의 정치 지형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중동 지역의 혼란이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의 ‘외국 테러리스트 조직’ 지정 기준은 △외국의 조직 △테러 행위 연루 △미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 등 세 가지인데,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형제단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이런 차원에서 튀니지의 형제단 계열 정당인 엔나흐다(Ennahda)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엔나흐다는 오랫동안 튀니지의 형제단 계열 정당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6년 5월 전당대회를 거치며 ‘무슬림형제단’이라는 이름과 거리를 뒀고, 그 대신 ‘무슬림 민주주의자(Muslim democrat)’라는 수식어를 채택했다. 그 이후, 엔나흐다는 당내 설교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 소르본대 출신으로 이 당의 ‘젊고 유망한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는 사이드 우이니시는 2016년 발간된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에서 “엔나흐다 당원들은 무슬림형제단과 이념적 면에서나 정치적 수준에서 다르다고 스스로 여긴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2011년 혁명 이래 여전히 많은 분석가들이 엔나흐다를 그저 ‘튀니지의 무슬림형제단’ 정도로 간주하는데, 그로 인해 우리 당이 혁명 이후 취한 노선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엔나흐다가 독일의 기독민주당(CDU)과 견줄 만하다며 “민주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를 공동 실현하는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튀니지 의회 내 최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엔나흐다는 2011년 ‘아랍의 봄’ 이래 꾸준히 집권 연정에 동참해 왔다. 지난해 9월 불거진 집권연정 내분과 진통에도 불구, 튀니지는 아랍의 봄 태생지답게 혁명이 유일하게 진척된 곳이다. 이집트의 무르시 정부가 무리한 이슬람화 추진으로 역풍을 맞아 퇴보한 경우인 반면, 튀니지의 엔나흐다는 국내외 정치 환경 변화에 맞춰 자기 변화를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전진하고 있다.

2012년 6월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승리한 무함마드 무르시의 포스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르시는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에 올랐으나, 1년 만에 쿠데타로 축출된 후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6월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승리한 무함마드 무르시의 포스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르시는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에 올랐으나, 1년 만에 쿠데타로 축출된 후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형제단은 테러리스트로 지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은 형제단의 90년 역사 중에서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무장 투쟁 등 시대 상황과 맞물려 택했던 폭력 노선, 알카에다 등 글로벌 지하디스트 조직의 주요 구성원들이 형제단 소속이었던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폭력 노선을 거부해 온 형제단에 ‘무장활동’이 어른거린 건 2013년 무르시 정부의 붕괴 때부터다. ‘하라캇 사와드 미스르(HASM)’와 ‘리와 알-토라’ 등 무장 노선을 원하는 형제단 분파 조직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지난 2017년 9월 30일 이집트 카이로의 미얀마 대사관에서 발생한 급조폭발장치(IED) 폭발 사건과 관련, HASM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공격 이유로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을 언급했다. 그러나 HASM과 같은 무장 분파들은 이집트(지난해 2월)는 물론, 영국(2017년 12월), 미국(지난해 1월) 등에서 이미 ‘특별 지정 국제테러리스트(SDGT)’로 분류됐다. 따라서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누구를, 어떤 기준에 근거해 테러리스트로 볼 것인가.

한편 미국은 HASM을 SDGT로 지정할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국장인 이스마일 하니야를 SDGT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례도 흥미롭다. 스스로를 ‘이슬람 저항 운동’이라고 부르는 하마스의 이념적 토대는 이슬람주의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인데, 1988년 제정된 창립정관 2항에는 “팔레스타인 무슬림형제단의 한 진영”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2011년 12월 아랍의 봄 시위가 한창이던 때, 런던의 아랍어 신문인 ‘알 하이얏’과의 인터뷰에서도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라고 조직을 소개했다. ‘무장 노선’과 ‘형제단 지부’ 간판 두 개를 동시에 내건 유일한 조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2017년 5월 11일, 이러한 입장에 조용한 변화가 감지됐다. ‘88년 정관’을 보완 발표한 ‘하마스의 기본 원칙과 정책’을 통해서다. 이 문서에서 하마스는 형제단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형제단에 대한 하마스의 ‘거리 두기’를 간접 암시한 것이며, 이는 형제단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온 걸프 왕정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는 신호탄이라고 봤다. 사실 하마스와 형제단의 균열은 2012년쯤부터 엿보이기 시작했다. 이집트 대선으로 집권에 성공한 형제단이 먼저 하마스와 거리를 두려는 신호를 보냈다. 이유는 자명하다. 탄압받던 이슬람 운동, 독재를 비난하던 야당이었던 시절과는 달리, 무르시 정부 출범과 함께 일국의 정권을 잡으면서 그 입지도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는 물론, 요르단과 사우디, 일본 등 37개 국가에서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하마스는 무르시 정부에 있어 ‘불편한 형제단 지부’였을지 모른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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