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에서 아이돌 그룹 'next you'를 연기한 실제 아이돌 그룹 'juice=juice'의 부도칸 공연 모습. HELLO PROJECT 제공

# 최근 시즌4가 시작된 Mnet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는 아이돌을 꿈꾸는 101명의 연습생이 등장한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꼭,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 걸그룹 아이돌 ‘카라’ 출신의 허영지는 한 TV프로그램에서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하겠냐”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질문으로 되받았다. “아이돌을…할까요, 제가?”

대한민국은 ‘아이돌 공화국’이다. 글로벌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배출한 나라이고, 빛나는 외모, 칼 같은 안무, 감미로운 목소리의 완벽한 현신들이 세계 음악시장을 매혹하는 나라다. 아이돌은 화려하다. 그러나 핀 조명 바깥의 그림자는 좀처럼 가늠되지 않는 것이 아이돌의 세계다. 대부분 10대 때 연예기획사에 발탁돼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을 견뎌내야만 하고, 성공 이후에 견뎌야 할 것들은 더욱 많아진다. 심지어 모두가 ‘BTS’나 ‘블랙핑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꿈의 무대 부도칸
아사이 료 지음ㆍ권남희 옮김
위즈덤 하우스 발행ㆍ356쪽ㆍ1만 3,800원

일본 작가 아사이 료의 신작 ‘꿈의 무대, 부도칸’은 바로 이 조명 바깥의 세계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영화 ‘키리시마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의 원작소설로 등단, 장편소설 ‘누구’로 역대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자가 되었던 그가 특유의 사실적 필치로 아이돌 생태계를 그려낸다. “아이돌이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말하려다 보니 지금 시대 자체를 말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 시대가 아이돌에게서 무엇을 욕망하며, 그 기대를 배반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올해 만 서른 살인 작가가 아이돌의 오랜 팬이기도 사생팬의 일기장처럼 업계 이야기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제목에 등장하는 ‘부도칸(武道館ㆍ무도관의 일본식 발음)’은 일본 도쿄의 공연장이다. 관객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으로, 1964년 건축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다는 점 때문에 일본 대중음악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곳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부도칸에서 공연하는 것이 꿈인 신인 아이돌 ‘next you’다. 연예기획사와 휴대폰 회사의 합작 오디션을 거쳐 데뷔하게 된 이들은 “3년 뒤 꼭 부도칸에서 공연하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히며 희망차게 아이돌의 길에 들어선다.

2016년 시작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듀스 101’에서 10대에서 20대 초반 소년, 소녀들은 간절하게 아이돌이 되길 소망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당연히, 꿈의 무대에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한창 성장기인 멤버는 몸에 살집이 붙었다는 이유로 ‘뚱보’라며 조롱 당하고, 또 다른 멤버는 겨우 TV프로에 출연했지만 애니메이션을 불법 다운로드 받은 사실이 밝혀져 비난 받는다. 교복을 입은 채로 나다녀선 안 되고, 비키니 화보 촬영도 감수해야 한다. 자연스레 솟아나는 이성에 대한 호감 역시 ‘팬들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억누른다. “우린 아이돌이니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아이돌이란 꿈을 꾸게 하는 존재잖아.” 하지만 “노래와 춤 이외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 꿈을 이뤘지만 정작 그 꿈에 발목 잡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연애 사실이 발각돼 삭발을 하거나, 팬사인회와 비슷한 악수회에서 팬들에게 피습당하는 소설 속 아이돌의 모습은 모두 일본에서 벌어진 실화에 기반한다. ‘청소년 장래희망 1위는 아이돌’이라는 대한민국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이야기다. 불법촬영을 당하고도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사죄해야 하고, 속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가 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가 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역사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무개념’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대한민국 아이돌의 현실이다. 자세가 삐딱해서, 표정이 불만족스러워서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돌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논란과 사죄 속에서, 정말 사죄해야 할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겨우 데뷔한다 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돌은 소수이고 빛의 유통기한도 찰나다. 아이돌을 다룬 다큐에서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하겠냐'는 질문에 걸그룹 '카라' 출신의 허영지는 대답을 망설인다. SBS 제공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 속 아이돌은 부도칸 무대에 ‘next you’로서 오르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돌이 아니라도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아티스트 사진에서 깨끗이 사라져도, 모두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도, 인터넷에서 아무도 떠들지 않게 되어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물론 앞으로도 살아갈 그녀를 방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