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어깨가 무겁다’에서 ‘가장’은 남성을 가리킬까 아니면 여성을 가리킬까? 한국어 명사에는 서양의 언어와 달리 문법적인 성의 구별이 없지만 특정한 낱말의 경우 성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 대표적인 말의 하나가 ‘가장(家長)’인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이 말의 주인공을 남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가장’은 사전에서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 또는 “한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꾸려 가는 사람”의 뜻으로 나온다. 이것만 보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장’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 가족에서, 집안을 대표하는 남자 어른”이라는 추가 뜻풀이를 보면 이 말의 성이 남성으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 “‘남편’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에서 그것은 더 분명해진다. 여성은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이 ‘가장’에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남성인 경우도 있고 여성인 경우도 있다.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꼭 남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남성만 ‘호주(戶主)’가 될 수 있다던 호주제도 이미 폐지되었다. 주민등록법상 남성이든 여성이든 ‘세대주’가 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가장은 남성’이라는 여성 차별적인 낡은 관념과 그것을 반영한 사전 뜻풀이뿐이다.
“육아와 경제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한부모가정 가장의 상황을 고려해”에서 ‘가장’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가리킨다. “소년ㆍ소녀 가장 돕기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에서 ‘가장’도 성별 구별이 없다. 생계를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또 남편이라고 해서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받는 무임승차의 시대는 지났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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