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결핵 예방을 위한 BCG 백신 주사가 부족한 ‘백신 대란’이 발생했다. 정부는 무료로 지원하던 주사형 백신 수급이 달리자 8개월간 가격이 비싼 도장형(경피용) 백신을 대신 무료 공급하면서 국고 손실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는 백신 수입사가 정부와 상의 없이 주사형 백신 1년치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고가의 도장형 BCG 백신 판매를 늘리기 위해 국가 무료 필수 백신인 주사형 백신 공급을 중단해 부당하게 독점적 이득을 얻은 한국백신과 계열사 두 곳에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국백신과 대표이사 등 임원 2명은 검찰에 고발된다.
결핵 예방을 위해 생후 4주 이내 신생아에게 접종하는 BCG 백신은 주사형과 도장형으로 나뉜다. 질병관리본부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주사형 백신만 국가 필수 예방접종 백신으로 지정한 뒤 무료 접종을 지원한다. 주사형은 덴마크 SSI(현 말레이시아 AJ)가 생산하는 제품을 국내 엑세스파마가 독점 수입하고, 도장형은 일본 JBL사 제품을 한국백신이 수입해왔다.
질본은 SSI의 백신부문 민영화 과정에서 주사형 백신 수급이 어려워지자 한국백신에 JBL사의 주사형 백신 수입 허가를 내줬고, 한국백신은 2016년 주사형 백신 2만1,900세트(최대 43만8,000명 접종 분량)를 공급한 뒤 질본의 요청으로 2017년에도 2만세트를 추가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백신은 기존 주력 제품인 도장형 백신 판매량이 2016년 8월 2만3,394세트에서 같은해 11월 1만2,242세트로 급감하자 당초 수입하기로 했던 2017년분 백신 수입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질본과의 협의도 없었다.
질본이 보유하고 있던 주사용 백신 재고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신생아 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이 비싼 도장형 백신을 맞혀야 했다. 무료인 주사형 백신과 달리, 도장형 백신은 백신 가격 4만3,000원에 접종 비용 2만7,000원까지 총 7만원이 들었다. 도장형 백신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 상태였지만 보호자들의 선택권은 없었다.
결국 정부는 2017년 10월 16일부터 2018년 6월 15일까지 8개월간 임시로 도장형 백신 무료 예방접종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사형(정부 조달가 1인당 2,358원)보다 도장형(4만원대) 가격이 비싼 탓에 예산 140억원을 추가로 들여야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독점 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백신을 대상으로 출고 조절 행위를 했다”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부당한 출고조절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한 것은 1998년 신동방의 대두유 출고조절 이후 약 20년만”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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