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스승의 날을 폐지하거나, 폐지가 어렵다면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국민청원을 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기삿거리를 찾고자 했던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이미 청원 글에서도 밝혔지만 기자들의 물음은 반복되었다. 이날만 되면 반짝하는 언론의 반응이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학교의 실상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 그 물음에 정성껏 답했다. 그렇게 스승의 날을 홍역 앓듯 보내고 이 부담스러운 관심이 내년을 기약하며 잠잠해질 때쯤 스승의 날을 매개로 교육 이야기를 꺼낸다.
2000년에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교직에 들어섰을 때 가장 유행한 말은 ‘수요자 중심 교육’이었다. 학창 시절 다소 억압적 생활을 경험했던 터라 나는 이 말을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반겼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이 말을 근거로 추진된 교육정책이 교육의 본질에서 한참 엇나간다는 것을 금방 깨닫기 시작했다.
수요자란 ‘무엇이 필요해서 얻고자 하는 사람’,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해서 사거나 사고자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필요한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나 기관’은 당연히 공급자에 해당된다. 주로 시장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이를 교육에 접목시키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의 수요자이고, 학교와 교사는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공급자로 여기면서 ‘교육서비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 오늘의 학교 모습은 예년과 많이 달라졌다. 교사들로 인해 속앓이를 하는 학부모는 줄어든 반면 학부모들로 인해 속앓이를 하는 교사는 늘어나고 있다. 한 세대 전까지는 마이크를 교사가 쥐고 있었다면 오늘날은 학생과 학부모가 쥐고 있는 셈이다. 둘 다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서로 할 말을 하고 이를 경청하는 가정이 건강하듯이 이런 학교 모습도 결코 건강하지 않다. 당연히 교사들의 사기와 의욕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이는 교육력 저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교육은 시장과 달라 수요와 공급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이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기본법’에서는 학습자, 보호자, 교원, 교원단체, 학교 등의 설립자ᆞ경영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교육당사자’로 언급하고 이들의 권리와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교육당사자의 책임을 밝힌 부분을 같이 살펴보자.
제12조(학습자) 학생은 학습자로서의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학교의 규칙을 준수하여야 하며, 교원의 교육ㆍ연구 활동을 방해하거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3조(보호자)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제14조(교원) 교원은 교육자로서의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에게 학습윤리를 지도하고 지식을 습득하게 하며,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듯 교육은 교육당사자가 함께해야 하는 것이고 권리 행사 못지않게 책임도 같이 져야 하는 것이다. 학습자와 학부모는 요구하고, 학교와 교사는 이를 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의 학교는 교육에 대한 책임이 학교와 교원에게 과도하게 주어지고 있고, 학습자와 학부모는 교육수요자라는 이름으로 요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부 정책도 이 방향으로 계속 추진되고 있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거나 폐지가 힘들면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국민청원은 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교육당사자들 모두가 ‘교육’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같이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자는 의도였다. 교사이자 학부모이자 교원단체 구성원으로서 말하는데 교육당사자는 있어도 교육수요자는 없다. 진정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육에서 수요자라는 말부터 걷어내야 한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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