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재판소 “배상금 0” 이례적 판정… 한국정부 상대 5조원대 ISD에 영향 주목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중재재판소(ICA)에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제기한 14억430만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중재신청에서 하나금융이 ‘전부 승소’했다. ICA가 중재신청에서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ㆍ국가 소송(ISD)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과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론스타에 완승… 배상금 ‘0원’
하나금융은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ICA가 “원고(론스타)의 청구를 전부 기각한다"며 “원고는 피고(하나금융)가 부담한 중재판정 비용 및 법률 비용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판정문을 보내왔다고 15일 밝혔다. 3심제인 법정 소송과 달리 중재신청은 단심으로, 이번 판정은 최종 결론 성격을 띤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취소 절차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받아들여진 적이 거의 없다”며 “전부 승소에 따라 론스타에 줄 손해배상금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론스타는 2016년 8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 협상 과정에서 금융당국을 빙자하면서 매각가격을 낮췄다”며 5억달러(약 5,600억원)의 중재를 신청했고, 이후 손해배상금과 이자 및 원천징수금액을 포함해 청구금액을 14억430만달러(약 1조6,100억원)로 올렸다.
이 분쟁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금융은 2010년 11월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51.02%(3억2,904만주)를 주당 1만4,250원(총 4조6,888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2012년까지 양측이 몇 차례 가격을 조정하면서 최종 매각대금은 3조9,156억원으로 결정됐다. 실제 지불액은 국세청이 원천징수하기로 한 세금(3,916억원)과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담보로 받아간 대출금(1조5,000억원)을 제외한 2조240억원이었다.
판정부는 “론스타는 피고(하나금융)의 기망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가격 인하가 없으면 당국이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며 청구 내역을 반박했다. 또 “론스타는 피고가 ‘가격 인하 없으면 승인 없다’는 식으로 강박(협박)했다고 주장하나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판단해 보면 이를 협박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판정부는 “피고는 계약에서 요구한 바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론스타와 충분히 협력ㆍ협의했으므로 계약 위반 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례적 전부 승소… ISD에도 청신호?
전문가들은 하나금융의 전부 승소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재는 말 그대로 당사자(하나금융-론스타)와 심판(ICC)이 모두 참여해 결론을 내리는 특성상 일부 승소 또는 일부 패소가 많고, 일방적인 결론은 거의 드물다. 금융권 관계자는 “완전 승소는 결과적으로 론스타의 주장이나 논리에 큰 허점이 있었다는 뜻”이라며 “하나금융이 당시에 가격을 깎으려고 금융당국을 빙자했다는 론스타의 주장도 힘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의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과세와 매각시점 지연, 가격인하 압박 등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낸 5조3,000억원 규모 ISD 결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도 “전부 승소는 론스타 논리의 연결고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의미여서 ISD에도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ISD는 판단 주체(국제투자자분쟁해결센터)와 당사자(정부-론스타) 모두 ICA와 다른 만큼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중재판정은 하나금융의 책임이 없다는 뜻이지, 정부 책임까지 없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론스타가 ISD를 제기한 주요 이유 중 하나인 ‘매각 차익 부당 과세’에 대해 우리 대법원이 2017년 국세청 패소 판정을 내린 점을 지적했다. 한 국제중재전문 변호사도 “하나금융에 완패한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어떻게든 성과를 챙기고 싶어할 것”이라며 “하나금융 승소가 곧 정부의 승소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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