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진 문학연구자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문학비평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류효진기자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은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라는 국민적 상실과 정권 교체가 있었고 문학계 안에서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와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을 겪었다. 오혜진(35)씨는 그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해 온 젊은 평론가다. 2013년부터 그가 쓴 칼럼과 논문, 평론 등을 엮은 책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은 한국 문학의 가장 첨예한 논쟁을 가로지르며 한국 문학의 정상성을 되묻는다.

스스로 “한국 문학의 생명력이 사라졌다고 진단된 시대”에 태어나 “문학이 딱히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공부했다고 말하는 오씨.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이 한국 문학을 읽지 않고, ‘제2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애통해하는 시대에 본의 아니게 태어난 사람으로서 한국 문학이 어떻게 의미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는지 저 자신에게 질문한 결과”라고 책을 소개했다.

오 연구자는 책의 제목에 대해 “누구나 문학을 읽고 쓰게 된 ‘문학의 민주화’ 시대에 ‘문학적 취향’이 만들어져 온 과정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아저씨 독자’로 상정되는 ‘이성애자 남성 지식인 중심 문학사’에 의문을 표한다. 그러면서 한국 문학이 제대로 재현하거나 충분히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던 변방의 자리에서 문학의 미래를 찾는다. “2013년 천명관, 정유정 작가의 서사성이 극대화된 장편소설(천 작가의 ‘나의 삼촌 부르스리’(2012), 정 작가의 ‘28’(2013) 등)이 등장하자 ‘아저씨 독자’가 사라진 시대에 나타난 선 굵은 서사라는 해석이 나왔어요. 그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가 ‘1990년대는 내면화되고 여성화된 소설이, 2000년대는 자취방에 갇힌 88만원 세대의 자폐적 서사가 지배했다’는 거였죠. 하지만 이런 도식에는 ‘한국 문학은 원래 남성이 지배하는 것’이라는 규정이 내포돼 있어요. 아저씨 독자가 사라진 것은 아련한 일로 얘기되곤 하죠. 하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젊은 세대의 어떤 상상력이 채웠는가에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에요.”

2016년 발표한 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은 오씨의 이름을 대중과 평단에 각인시켰다. 2015년 불거진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를 둘러싼 문단의 논쟁에 대해 “한국문학이 독자를 잃고 게토화된 것은 엘리티즘적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 같은 퇴행 때문”이라고 비판한 글이었다. 오씨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K팝처럼 만들겠다면서 미디어가 기획한 ‘K문학’이라는 말이 있죠.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독자들은 식민주의적 열등감을 내포한 말로 해석하고 사용했어요. 마찬가지로, 한국 문학이 왜 독자를 잃었는지를 치열하게 되묻지 않으면 한국 문학은 또 다시 조롱의 기표가 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거예요.”

오 연구자는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를 한국 문학장이 어떻게 이해하고 싶어하는지는 다른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읽히는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 자체가 식민주의적 욕망”이라고 꼬집었다. 류효진 기자

‘아저씨 독자’는 원래 문단에서 ‘힘을 가진 주류 독자’라는 뜻으로 통했다. 오씨가 해석하는 ‘아저씨 독자’는 ‘가부장적 패권주의로 무장해 여러 폐단을 생산해 내는 독자’에 가깝다. ‘아저씨 독자’가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하는 대중 독자, 페미니즘으로 감수성의 혁명과 인식의 갱신을 경험한 젊은 여성 독자 등이다. 오씨는 이들이 ‘민주주의의 유의미한 자원으로서의 문학’을 가능케 한다고 평가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한국 문학은 자기 정체성을 ‘보통사람의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재현체계’로 정의해요. 한국 문학이 말하는 ‘보통 사람’은 누구일까요. 과연 그들을 재현하는 데 충실했을까요. 한국 문학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대상을 ‘보통 사람’에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남성 성장 서사의 일부로 등장시켰을 뿐이죠. 그런 대상을 재현하는 데 더 많은 감수성이 필요해요.”

오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문단에서 글이 쏟아져 나온 나온 현상을 진단하며 “문학이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를 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피해자는 ‘꽃’같은 순결하고 무력한 존재로 대상화됐고, 참사 자체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아우슈비츠’ 같은 유사 사례에 비유됐어요. 모두가 난생 처음 겪는 사건이 왜 클리셰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지 의문이었죠.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말하기 위한 시점과 플롯, 비유, 표상을 발명하는 것은 한국 문학이 천착해야 할 과제예요. 그게 제대로 돼야 문학이 ‘언어의 예술’임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 ‘역할’은 믿는다는 오씨의 말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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