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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모교 폐지” 초강수… 프랑스 엘리트주의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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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모교 폐지” 초강수… 프랑스 엘리트주의 바뀔까

입력
2019.05.16 16:10
수정
2019.05.16 22: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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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평등 요구 목소리에 ‘엘리트의 산실’ 국립행정학교 문 닫을 듯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 엘리제궁에서 취임후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 개혁 방향에 대해 발표한 가운데 프랑스 엘리트들의 산실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 폐쇄 계획도 밝혀 프랑스 사회가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파리=EPA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 엘리제궁에서 취임후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 개혁 방향에 대해 발표한 가운데 프랑스 엘리트들의 산실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 폐쇄 계획도 밝혀 프랑스 사회가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파리=EPA 연합뉴스

프랑스의 ‘투 트랙’ 고등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모교이자, 프랑스 집권ㆍ엘리트의 산실이 국립행정학교(ENA) 폐쇄를 언급하면서다. 지난해 말부터 6개월째 계속되는 ‘노란 조끼’ 시위대의 평등 요구 목소리를 무마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프랑스의 대학 교육은 크게 누구나 쉽게 가는 ‘일반 경로’와 아무나 못 가는 ‘엘리트 경로’ 두 가지로 나뉜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학생들이 프랑스 전국 국공립 대학에 전공을 선택해 입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르본 대학(현 파리 4대학)을 정점으로 하던 프랑스의 학벌구조는 ‘68혁명’ 이후 대학이 평준화되면서 서열이 사라졌다.

하지만 극소수 예외가 있다. ‘그랑제콜’(Grandes Écoles)로 불리는 기관이다. 그랑제콜은 고급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폐쇄를 공언한 ENA가 대표적이다. ENA를 졸업한 후에는 의무적으로 정부에서 10년동안 일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양질의 공무원을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에나르크’로 불리는 ENA 출신자들은 프랑스 정ㆍ관계를 장악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김경진 기자

ENA는 프랑스 집권ㆍ엘리트의 배출처다. 1958년 제5 공화국 성립 이후 취임한 대통령 8명 중 절반인 4명이 ENA 출신이다. 나머지 넷, 샤를 드골 전 대통령과 조르주 퐁피두, 프랑수아 미테랑,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ENA 출신이 아니다. 다만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드골을 제외하고 미테랑과 사르코지도 그랑제콜 중 하나인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했다. 퐁피두 전 대통령도 그랑제콜 중 하나인 고등사범학교 졸업생이다. 마크롱 행정부에서도 총리와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등 고위직은 ENA 출신이 자리잡고 있다. 가히 ‘그랑제콜 공화국’인 셈이다.

마크롱의 모교 해체 시도는 엘리트주의 장점 대신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가 더 크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원자의 배경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점수만으로 뽑아, 입학 경쟁을 물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류층 출신으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ㆍ지방 출신이 거의 입학할 수 없게 됐고 약자와 사회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약화됐다는 것도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로 ENA엔 1년에 80명이 입학하지만 한 재학생은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거의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ENA 출신으로 프랑스 문화부 고위 공직자로 재직중인 장파스칼 라뉘는 “프랑스식 위선”이라며 “평등주의적 시스템은 실생활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이 ‘ENA 폐쇄’라는 말만 던져 놓고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ENA에 대한 옹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ENA 하나를 없앤다고 해서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 선호가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대학 입학이 어렵지 않은 만큼 일반 대학에선 학생수가 폭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일부에선 ENA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도 있다. 노란 조끼 시위대를 무마하기 위해 꺼내 든 대책이 자충수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다. 기계적 평등 대신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ENA 등 그랑제콜이 우수한 공직자를 양성하는 등 프랑스 사회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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