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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인류세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들

입력
2019.05.16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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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후변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운데) [EPA=연합뉴스]
스웨덴 기후변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운데) [EPA=연합뉴스]

작년과 올해 사이 몇몇 잡지가 인류세(人類世ㆍAnthropocene)라는 신조어로 특집을 꾸몄다. 인류세란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의 기후가 매우 온화하고 안정적이었던 홀로세(Holocene)의 뒤를 잇는 새로운 지질연대 이름이다. 이 용어는 구 소련의 지질학자 알렉세이 파블로프가 1922년 처음 사용했으나 서방학계에서는 상용되지 못하다가, 노벨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사용하면서 국제적인 유행어가 됐다.

45억년에 이르는 지구의 지질연대표에서 한 시대 단위에서 다른 시대 단위로의 이행을 만들어내는 힘은 자연이었다. 반면 인류세는 인간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지질연대를 도입한 주역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연대와 구분된다. 지구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초기 대량으로 석탄연료를 사용하면서부터 인간이 기후 시스템을 교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그 이후 150년 동안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했다. 1945년경부터 시작되었다는 인류세는 지구 시스템 전반에 연쇄적 영향을 미치면서 해양 산성화, 생물종의 멸종, 질소 순환의 혼란 등을 불러온다. 이런 예상은 인류세를 과학적 판본의 묵시록으로 만든다.

많은 생태주의자들은 자연을 타자로 간주한 기독교와 서양의 인간중심주의 철학을 인류세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성서’에 따르면 신은 인간이 사용하도록 자연을 창조했고, 이에 따라 자연을 지배하고 개발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의식이 생겨났다. 또 헤겔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연은 잠재적인 상태로만 존재하며, 인간의 과업은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화함으로써 그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기독교와 인간중심의 형이상학이 발전시켜온 서양 철학은 자연과 인간의 이원론을 상정하고 있는데, 그것을 칸트만큼 명료하게 정식화 해놓은 사람도 없다. 칸트 철학은 세계를 필연의 영역(자연과 자연법칙)과 자유의 영역(인간이 점유한 영역)으로 명료하게 구분하는데, 이런 구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식민화를 부추긴다.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이상북스, 2018)는 허다한 생태주의 서적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책의 목적은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전지구적인 생태 위기를 새삼스레 경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지구 시스템의 종말과 동어의인 인류세의 의미를 곡해하거나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여러 형태의 담론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의 주적 가운데는 과학ㆍ기술의 힘으로 인류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에코모더니스트(ecomodernist)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인류세를 자연을 개조하고 제어하는 인간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여기는 기술유토피아주의자들은 그의 주적이 아니다.

에코모더니스트와 기술유토피아주의자들의 인류세 부정은 노골적이어서 알아보기 쉬운데 반해, 그가 주적으로 삼은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과 생태주의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따라 인간을 자연과 근본적으로 분리한 것이 근대성의 원죄”라고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류세 해결의 장애가 된다. 즉 이들은 인간과 자연을 한 덩어리의 전체로 파악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의 위대한 힘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과학적 주장에 대적한다. “인간의 힘과 특별한 위치를 부인”하는 이런 관점은 지구 시스템을 파괴해온 초행위자로서의 인간을 보이지 않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해밀턴은 인류세의 의미를 곡해하는 이들 가운데는 실존적 패배주의들도 있다면서, 가이아 이론(Gaia: 자기 조절하는 지구)으로 생태철학과 환경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제공한 제임스 러브록을 거기에 포함시킨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인류의 막대한 문화적ㆍ지적 성취가 먼지로 취급되고 말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러브록 같이 자연이나 생태계가 중심에 있는 “비인간중심의 관점”이 아닌, 더 많은 인간의 책임 의식과 정치만이 인류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더욱 강화된 인간지상주의에 불과한지, 아니면 지은이의 말처럼 “전략”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많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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