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도 이전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자카르타엔 횡단보도와 인도가 없는 곳이 많아 사람들이 차량과 뒤섞여서 도로를 건너 다닌다. 한국일보 특파원 사무실에서 인도네시아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가려면 저 길을 지나가야 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자카르타 한국일보 특파원 사무실에서 인도네시아주재 한국 대사관까지는 직선거리 1.1㎞, 도보 10분 거리다. 유턴을 포함하면 2.4㎞, 통상 차로 20분 소요된다. 그러나 시간이 더 걸리기 일쑤다. 어느 날 급한 약속에 도보를 감행했으나 초장부터 난감했다. 인도가 없고 횡단보도가 없다. 맞은편은 공사 중이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차를 피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도가 부족한 인도네시아의 현실이다.

비가 쏟아지면 주변이 범람해 섬이 되는 건물이 자카르타 도심엔 꽤 있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야 나갈 수 있다. 아니면 물이 빠질 때까지 30분가량 기다려야 한다. 이런 날 도로는 가히 주차장이다. 몇 년 새 사정이 나아졌다는 게 이 정도다. 빈약한 배수 시설 속 가라앉는 도시의 자화상이다.

임기 5년 연장이 확실시되는 조코 위도도(별칭 조코위) 대통령이 최근 철 지난 유행가를 틀었다. “수도를 옮기자!” 수사에 그친 게 아니라 지난달 말 각료 회의에서 이전 계획을 승인하고, 자카르타에서 500㎞ 넘게 떨어진 후보지들을 잇따라 시찰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엔 수도 이전의 당위를 설파하며 어디로 옮길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의견을 두루 구하고 있다. 23년 집권한 국부(수카르노)도, 32년 철권을 휘두른 군부독재자(수하르토)도, 10년 문민정부(유도요노)도 이루지 못했던 대국의 과업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북부 자카르타 일대 모습.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인도네시아가 수도를 옮겨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시내 차량 주행속도는 시속 8~10㎞, 교통 체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연간 70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부 각료가 제 시간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할 정도다.

13개의 강이 교차하는 늪지대 해안에 위치한 자카르타는 도시 일부가 60㎝가량 침몰했다. 상수도 보급률이 60%에 불과해 곳곳에서 지하수 개발이 계속되면 120㎝ 넘게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부 자카르타는 최근 10년간 2.5m 정도 가라앉아 해수면 아래에 있다. 지금도 매년 1~15㎝씩 낮아지고 있다. 우기엔 홍수에 시달린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연 4~6㎝)까지 겹쳐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침몰하는 도시 중 하나(세계경제포럼)다.

1,000만 도시 자카르타의 인구밀도는 ㎢당 1만5,000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 평균(140명)의 100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자카르타와 인근 생활권 도시를 아울러 일컫는 ‘자보데타벡(jabodetabek)’ 인구는 3,170만명이다. 2030년엔 일본 도쿄 인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폐수는 약 4%만 처리돼 지하수와 도시를 오염시키고 있다. 지역 균형 성장을 위해서도 자카르타의 인구 과잉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후보지와최근 40년간 지진 발생 현황 및 인구밀도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새 도읍지 후보는 칼리만탄(보르네오)섬에 집중돼 있다. 자카르타가 속한 자바섬과 달리 ‘불의 고리’라는 환태평양조산대에 포함되지 않아 지진 화산 등 자연재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동서 직선거리 5,425㎞에 달하는 국토의 중앙에 있다. 칼리만탄 동쪽 술라웨시섬은 지난해 팔루 지진 탓에 후보지에서 일찌감치 배제되는 분위기다.

칼리만탄의 팔랑카라야(중부) 반자르마신(남부) 폰티아낙(서부) 발릭파판(동부) 등지가 거론되는데, 팔랑카라야가 현재 선두다. 조코위가 2017년 수도 이전 타당성 조사를 지시한 바 있고, 수카르노도 점찍었던 곳이다. 부지도 가장 넓다. 그러나 열대 우림이 우거진 분지 지형이라 거의 해마다 벌어지는 자연 발화와 화전민들의 방화로 인한 산불과 연무가 약점이다. 일상생활과 항공기 운항을 방해할 정도다. 이전에 따른 환경 파괴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브라질(1960년) 카자흐스탄(1997년) 말레이시아(1999년) 한국(2012년)을 수도 이전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정치ㆍ행정(워싱턴 DC)과 경제ㆍ금융(뉴욕)이 분리된 미국처럼 자카르타는 경제 수도로 남고, 새 도읍은 행정 수도 역할을 담당하는 식이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도 후보로 거론되는 팔랑카라야 일대가 2015년 산불과 연무로 뒤덮인 모습.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아직 반대 목소리가 거세진 않다. SNS엔 지지하는 의견들이 많다. 이번 선거에서 재선이라는 추진력을 얻은 데다, 국회 우호 의석도 60% 이상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대로다. 게다가 인프라 투자는 조코위의 주특기다. 부와 정보가 극소수에 집중된 경제 구조상 잡음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회의론은 긍정적인 분위기를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 “결국 아무도 하지 못했다”는 경험칙이 60년 가까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다. “자카르타 등록 자가용 1,700만대 중 정부 차량은 14만대” “공무원은 자카르타 인구의 9% 안팎” 같은 수치를 제시하며 찬물을 끼얹는 일부 식자가 있는가 하면, “새 수도도 자카르타처럼 괴물이 될 것” “수도를 옮겨도 자카르타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을 것”이라는 비관론자도 있다.

결국 돌고 돌아 돈이 문제다. 공항 통신망 등 기반 시설을 갖춘 국유지를 물색해 부담을 줄인다고 하지만, 최소 330억달러(약 40조원)로 추산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10년으로 예상되는 건설 기간 역시 수도 이전 성공 여부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난달 말 폭우로 인해 물에 잠긴 남부 자카르타 지역의 한 마을. 자카르타 포스트 캡처

차라리 이런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돈이 있으면 일단 그 돈으로 자카르타의 문제부터 해결하라. 그런 다음 옮기든 말든.”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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