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 친분 내세워 검문 거부한 판사 겨냥
선거, 국왕 대관식 등 큰 행사를 마무리한 태국에서 ‘풍자’가 유행하고 있다. 국가 안보, 왕실 안정 등의 이유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지만, 참을수 없는 고관대작들의 권위주의에 국민들은 패러디로 대항하고 있다.
14일 일간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태국 소셜 미디어에서는 짧은 문장 하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촉의 친구다.”
‘촉’은 태국 남부 퉁야이 지역 경찰서장의 별명으로, 그 이름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열흘 전쯤 있었던 한 고위 판사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있다.
지난 2일 밤 퉁야이지역 검문소에서 에까뽄 추이송깨오 순경이 차량 운전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신을 지역 법원장이라고 주장한 이 운전자는 “너네 경찰서장을 내가 잘 안다” 신분증 제시는 물론, 검문에 불응하고 검문소를 떠나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에까뽄 순경이 내근직으로 전보됐고, 그 법원장이 ‘안다’고 언급한 경찰서장은 에까폰이 부적절한 말투로 검문을 했다며 전보 조처를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판사를 두둔하면서 특히 에까뽄에게 “법원장께 직접 사과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유되고 에까뽄이 업무에서 배제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민심은 폭발했다.
결국 쁘라윳 짠오차 총리까지 나서 해당 순경의 업무 복귀를 지시했지만, 여전히 민심은 가라 앉지 않고 있다. ‘난 촉의 친구다’는 스티커가 등장해 유리창 등에 붙는가 싶더니, 해당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까지 제작돼 팔리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해당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자동차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논란의 주인공인 법원장은 태국 법원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고, 경찰서장 역시 휴가 복귀 직후 경찰 조사가 예정돼 있는 등 사태는 마무리 수순이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 앉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네티즌들은 이들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합당한 처벌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나 촉의 친구"라는 풍자적인 문구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거나 이번 사태를 풍자하는 노래 가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태국 사회에서 법조계 인사들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처음이 아니라고 인터넷 매체 카오솟은 지적했다. 지난 2017년에는 식당까지 에스코트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관 2명이 검사에게 사과해야 했고, 그 한 해 전에는 주차금지 구역에 주차를 했다고 지적한 공무원들에게 화를 내고 플라스틱 물병을 던지는 판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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