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하이킹, 처음 들어봤다고?
등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도 인기가 대단한 취미다. 산에 다녀왔다며 이를 인증하는 해시태그(#)도 수백만개에 이른다. ‘국민 취미 1위’라고도 불리는 ‘#등산’에 도전장을 내민 해시태그가 있다. 바로 ‘#클린하이킹’이다.
#클린하이킹은 하이킹 아티스트 김강은(29)씨가 인스타그램에 불러 일으킨 나비 날개짓 같은 바람이다. 시간이 흘러 태풍처럼 커다란 캠페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지난해 아버지와 지리산 1박2일 산행을 갔는데, 대피소 취사장을 보고 경악했어요. 음식물, 술병, 일회용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난장판이 돼 있더라고요. 이건 ‘산행문화와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사랑하는 산을 계속 오르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해요.” 김씨는 이날 충격을 받은 채 산을 내려오며 눈에 띈 쓰레기를 하나씩 주워 담았고, 그날 목격한 일을 SNS에 공유했다. 김씨의 일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만 한 게 아니었다. 행동에 나섰다. 산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자는 캠페인, #클린하이킹의 시작이다.
이후 김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남기고 이를 SNS에 공유해나갔다. 소소한 시작이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클린하이킹 해시태그는 어느덧 100개를 넘었다. 그는 “지금은 제가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는 형태로 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쉽게 #클린하이킹을 실천하는 문화, 그걸 SNS에 올리는 문화, 궁극적으로는 산을 깨끗하게 사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본 #클린하이킹
평소 산 좀 탄다는 기자는 #클린하이킹 캠페인을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김씨에게 준비물을 물어 직접 해보기로 했다. 준비는 간단했다.
준비물
클린백(쓰레기를 담을 봉투), 집게(허리를 덜 숙여도 돼서 편리함). 끝.
다만 김씨는 유의할 점이 있다고 했다. 바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김씨는 “클린하이킹을 하러 갈 때만큼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했으면 좋겠다. 일회용 페트병 생수보다는 텀블러를 사용하거나 김밥을 포장할 때도 도시락을 준비해가고 나무젓가락 대신 개인 수저로, 물티슈 말고 손수건을 이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언대로 준비물을 챙겨 지난달 28일 산에 올랐다. 목표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높이 338.2m, 인왕산이었다. 정상까지 오르며 등산로에서 발견한 쓰레기라곤 사탕 껍질 한 개와 물티슈 한 장뿐이었다. 특히 인왕산의 가파른 바위 코스인 ‘기차바위’ 부근은 쓰레기라곤 전혀 찾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이미 #클린하이킹 캠페인이 필요 없을 만큼, 한국 등산객들은 쓰레기를 잘 치우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정상에서 이 생각은 착각으로 변했다.
정상에서 만난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기도 전에 쓰레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돌로 된 정상 표석 바로 옆에 있는 바위 틈에 종이컵 한 개가 박혀 있었다. ‘정상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르내리는 바위 사이에 언제부터 박혀 있었는지는 모르는 종이컵을 빼내어 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물티슈, 담배꽁초, 먹다 버린 과일 등이 눈에 띄었다. “야호” 외치며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허리를 굽히고 쓰레기를 줍자니 눈치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유난인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클린하이킹 해시태그 인증을 위해 모아온 쓰레기를 들고 사진을 찍을 때는 옆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버린 사람보다 주운 사람이 부끄러울 이유는 없었지만, 주목 받는 건 조금은 부담이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더 많은 쓰레기를 발견해 데려올 수 있었다. 아마 정상에서 먹고 마신 것들을 내려오는 길에 ‘헨젤과 그레텔’처럼 하나, 둘씩 흘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큰 보폭으로 훌쩍 훌쩍 뛰어내려갔을 길이었지만,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는 좁은 보폭으로 두리번두리번거려야 했다.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돌 틈에, 낙엽 사이에 숨어있었다. 한때 간식이었을 쵸코과자 껍질과 이를 먹고 난 뒤 썼을 법한 물티슈, 갈증을 달래주었을 이온음료 빈 병 등을 주워 내려왔다. 허리를 숙여 쓰레기를 줍고 있는 사이에 한 중년 등산객은 “아이고, 좋은 일 하시네요”라며 지나갔다.
등산을 마친 뒤 #클린하이킹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담는 뻔한 인증 사진보다 환경 보호, 나아가 다른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됐다.
◇#클린하이킹 해시태그 인증이 중요한 이유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SNS에 인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 우리의 목적은 ‘쓰레기 줍기’가 끝이 아니라 ‘깨끗한 산행문화 퍼뜨리고 만들기’이니까요.”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과 해시태그 달기가 중요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쓰레기 줍기를 인증해서 올리면 좋다. 저는 집게를 들고 멋진 곳에서 인증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족이 ‘요즘 감성으로, 재미있고, 중독성있게 쓰레기 줍기’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인 셈이다.
김씨는 “쓰레기를 줍는 데 너무 열중해서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또 줍는 것만큼 버리기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주운 쓰레기는 소각용과 재활용을 분리해 버리는 게 좋다”며 “하산 지점 근처에 분리수거장이 마련되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조언을 끝까지 따르기 위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공감을 뜻하는 ‘좋아요(Likes)’는 금세 늘었다. 폭발적인 숫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게시물을 본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는 분명 의미가 있었을 테다. #클린하이킹 뜻에 공감해 직접 댓글을 남기는 구독자도 있었다.
김씨는 “#클린하이킹을 하며 마주하는 모든 쓰레기를 가져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쳐버리는, 너무 힘든 봉사활동보다는 매번 쉽게 할 수 있는 유쾌한 활동이 됐으면 좋겠다. 일부 구간만 청소하기로 하거나, 치울 쓰레기 개수를 사전에 정하는 것도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직접 해본 #클린하이킹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산 정상의 멋진 풍경을 기대하며, 맛난 간식을 챙김과 동시에 주변 쓰레기까지 수거할 의지만 가져간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산 정상에서 훔치는 땀방울이 조금 더 뜻 깊을 수 있는 길, 그것이 바로 #클린하이킹이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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