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아메드 에티오피아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표현의 자유와 함께 혐오 발언의 위험도 덩달아 생긴 거죠.”
11년 경력의 에티오피아 기자 엘리아스 메세레트는 12일(현지시간) 중동매체 알자지라에 이 같은 우려를 전했다. 신임 총리의 개혁정책으로 수십년만에 ‘언론의 봄’이 찾아왔지만 그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언론보도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공간이 생기자마자 종족 갈등을 부추기는 편향적인 보도와 혐오 발언까지 범람한 탓이다.
에티오피아는 근래 언론의 자유가 눈에 띄게 향상된 대표적인 국가다. 개혁 성향의 40대 신임 총리 아비 아메드가 지난해 취임 직후 구금된 언론인 석방과 반체제 사이트 운영 허용 등 언론의 자유를 대대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 지수는 1년만에 40계단이나 껑충 뛰어올라 180개국 중 11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표현의 자유가 찾아온 뒤 종족 갈등도 새로 ‘발굴’되고 있다”면서 “보기에 따라선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오로모족 출신 정치인이 대중연설에서 오로모족 언어 사용을 장려한 것을 두고 “인종 청소를 조장했다”고 비난한 주간지 ‘에포티스’의 보도를 거론했다. 오로모족에게만 신분증이 발급된다거나, 여러 지역에서 오로모족 외 다른 종족들은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등 종족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보도가 충분한 검증 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에티오피아에는 최대 부족인 오로모족을 비롯해 80여개 종족이 있고 이들 종족 간 충돌이 핵심적인 사회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아디스아바바대 저널리즘 강사인 아스메릿 하일레셀라시에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최근 사람들은 각자 민족ㆍ종족 노선에 따라 언론 매체를 조직하고 있고, 이는 종족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2월 오모로족 이외 종족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가 이뤄진다는 의혹을 받던 레게타포 지역에서 주민들을 취재하던 기자 2명이 10여명의 폭도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분열된 언론 환경과 종족 간 반감이 유혈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에티오피아 월간지 ‘애디스 스탠다드’의 테세데일 레마는 “에티오피아는 현재 정치ㆍ민족적으로 깊이 분열돼있고 위태로운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국제인권감시단(HRW)도 “(언론) 해방이 보호장치의 공백 속에서 벌어지고 있고 사람들의 발언에 최소한의 제한도 없는 건 큰 문제”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때문에 에티오피아 정부는 최근 들어 혐오 발언과 가짜 뉴스를 유포할 경우 최고 징역 3년형에 처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에티오피아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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