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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집단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시민군 사살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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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집단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시민군 사살명령”

입력
2019.05.13 17:11
수정
2019.05.13 20:2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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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당시 미국 육군 정보요원’ 김용장씨 증언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 “시신 일부 해양 투기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증언한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오른쪽) 씨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증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증언한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오른쪽) 씨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증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시민을 향한 집단발포(1980년 5월21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살명령’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계엄군의 발포 직전 전두환씨가 헬기를 타고 광주에 직접 내려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씨 측은 광주 방문을 부인하고 있지만, 5ㆍ18 발포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던 미 육군 방첩부대 소속 한국인 정보요원인 김용장씨는 이 같은 정보를 미 국방성에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1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점심시간 전 K57(제1전투비행단ㆍ광주 송정)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4명과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오자마자 K57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발포명령, 심하게 얘기하면 사살명령이 거기서 전달됐다고 믿는다”고 했다. 계엄군의 시민군에 대한 발포는 그날 오후 1시쯤 자행됐다.

김씨는 5ㆍ18 당시 제1전투비행장에 주둔한 미 육군 501정보여단 4명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정보요원(군사정보관)이다. 김씨는 당시 수집한 40여건의 정보를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고, 그 중 5건이 백악관에, 3건이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에 보고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이뤄진 시신 소각, 헬기사격, 광주 교도소 습격, 공수대원에 의한 성폭행도 제 첩보 40건 속에 들어 있었다”고 폭로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다친 남현애·이광영 씨가 13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헬기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다친 남현애·이광영 씨가 13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헬기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김씨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이 제기한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 "전두환이 허위날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미국 정찰위성 2대와 공군 조기경계관제시스템(AWACS)이 광주와 한반도를 정밀 감시하고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북한 특수군 600명이 미군의 첨단감시망을 피해 광주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보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광주에서 시민행세를 하던 사복 군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 제가 첩보를 입수하고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 후 30∼40명 가량으로 보고했다"며 "나이는 20∼30대 젊은이들이었고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다.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5월 20일 성남 비행장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제1전투단 비행장에 도착했고, 김씨는 당시 격납고에서 이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 특수군이 했다는 방화, 총격, 장갑차, 군수송기 탈취는 일반시민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매우 극렬한 행위”라며 “저는 감히 남한 특수군이 선봉에서 시민을 유도하거나 직접 벌인 소행이라고 추정한다”고 했다. 이어 “유언비어 유포 역시 이들이 시민으로 위장해 벌인 공작일 것"이라며 "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가 고도의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서재훈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서재훈기자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5ㆍ18 당시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단장’이던 허장환 전 505보안대 정보요원이 함께 참석했다. 그는 1988년 광주 청문회에서 “광주사태의 사전조작 및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 허씨는 전일 빌딩 헬기사격과 관련 "(시민군이 있는) 도청을 은밀하게 진압하러 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헬기로 저격병을 저격하는 작전을 구상했다"며 "'호버링 스탠스'(헬기가 한 자리에 멈춰 비행하는 것)에서 사격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의 사살명령에 대해서는 “발포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전두환씨의) 말이 맞다. 전씨는 발포명령권자가 아닌 사격명령권자”라고 했다. 발포명령은 목숨이 위험할 경우에 발포하는 자위적 조치다. 허씨는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 '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절대 자위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전두환이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신 소각을 두고는 “침투자 중 북괴 간첩이 있지 않나 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어 가매장(임시매장)한 시신을 발굴해 전부 지문을 채취했다”며 “시신을 다시 묻을 수 없어 광주통합병원에서 화장처리를 했고, 용량이 초과해 김해공항으로 (시신을) 빼서 해양투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철저한 시나리오로 광주시민을 짓밟았다는 게 두분 증언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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