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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황교안이 꿈꾸는 나라는

입력
2019.05.1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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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이미지 벗고 ‘거리의 투사’로 변신

극우 정치의식에 종교적 독선, 우려 커

‘적폐청산’ 비난하며 ‘좌파청산’ 외쳐서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오전 민생탐방 '국민과 함께'를 위해 찾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삼거리에서 지역 상인으로부터 경기현황을 전해 듣고 음식을 직접 사서 먹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오전 민생탐방 '국민과 함께'를 위해 찾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삼거리에서 지역 상인으로부터 경기현황을 전해 듣고 음식을 직접 사서 먹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변신이 놀랍다. 장외 집회에서 그가 보인 연설 솜씨는 기성 정치인 뺨칠 만큼 일취월장이다. 지방에선 지지자들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잠자리로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달 전까지 그에게서 풍기던 차가운 관료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거리의 투사’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한국당내에서도 “정치 신동이 나왔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황 대표의 변모는 그의 ‘권력 의지’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권력을 지향하고 쟁취하려는 강한 의지가 잠재돼 있다 정치적 기회가 찾아오자 발산됐다는 분석이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황 대표의 권력 의지는 국무총리 시절 뚜렷해졌고, 탄핵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단단해졌다고 한다. 퇴임 후 페이스북 활동을 시작으로 출판기념회 개최, 한국당 의원들과의 회동, 한국당 입당, 당 대표 출마로 이어진 일련의 행보는 ‘권력 의지’와 ‘대권 의지’를 다지고 표출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은 공교롭게도 황 대표의 대권 도전 의지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장외 투쟁을 빌미로 전국을 누비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지지자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야당 대표로서의 민생 탐방이라기보다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둔 대선 주자 행보라는 게 어울린다. 현장에서는 “황교안을 청와대로” “황교안 대통령” 등의 구호가 거침없이 나온다.

하지만 황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 갈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황 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줄곧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에 올라있다. 적어도 가장 강력한 야당 지도자라는 인식을 많은 국민에게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황 대표를 규정짓는 핵심 정체성은 ‘공안 검사’다. 권위주의 시기의 공안 검사는 시민을 체제와 반체제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은 경우가 많았다. 그의 모든 주장이 기승전 ‘좌파독재’인 것은 그런 연유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을 문재인 정권의 핵심으로 보는 황 대표에게 문재인 정부의 국가 정책은 ‘좌파 포퓰리즘’으로 치부된다. 같은 맥락에서 선거법과 검찰 개혁 등 패스트트랙은 운동권 좌파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그 모든 게 타협이나 협상이 아닌 타도와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죽을 각오로 좌파 독재에 맞서 피를 흘리겠다”는 섬뜩한 발언은 그래서 나온다. 3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공안 검사 황교안’이 고스란히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든다.

황 대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보수 개신교’다. 개인의 신앙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종교를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인다는 게 우려스러운 것이다. 유독 그의 화법에는 선과 악, 천사와 악마 등의 종교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 연관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악한 세력”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로 규정한다. 황 대표 주변에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걱정을 더한다. 오죽하면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그의 독선적 신앙심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극우적 정치 의식에 종교적 독선이 결합되면 국가의 운명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극우 포퓰리즘과 보수 개신교 세력 득세로 민주주의 퇴행을 겪는 것을 남의 일로만 볼 수는 없다. 새로운 시대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발상을 요구한다. 철 지난 색깔론을 보수의 새 길인 양 외치는 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황 대표에게 진정 대권 의지가 있다면 적대적ㆍ공격적 인식에서 벗어나 포용과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을 비난하면서 ‘좌파 청산’을 꿈꾸는 것은 모순이다. 황 대표에겐 정치의 ‘책임 윤리’와 ‘신념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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