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스코긴스 개인전 ‘우리는 가족’
하늘엔 뭉게구름과 해님, 땅엔 오두막 집 한 채를 그려 넣었다. 손을 맞잡은 채 다정하게 웃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도 빼놓지 않았다. 처음 크레파스를 잡아 본 아이가 그렸을 법한 이 서툰 그림,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미국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46)는 “왜 안 된다는 거죠?(Why Not?)”라고 되묻는다. “어른이 되는 순간 생각과 표현은 정제되고 계산되기 마련이에요. 아이들은 어떤가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려내지 않나요? 아이들의 그림과 글씨가 어쩌면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울 수 있어요.”
동심을 표현한 그림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스코긴스가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g.gallery)에서 ‘우리는 가족(We Are Family)’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아이가 그린 듯한 회화부터 국내에는 처음 선보이는 종이비행기 설치작까지 다양한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지갤러리에서 얼마 전 스코긴스를 만났다.
스코긴스를 ‘힙’한 이름으로 만든 건, 언뜻 ‘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거대한 노트 시리즈다. 가수 지드래곤과 영화감독 J.J. 에이브럼스 등이 노트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높이 1m70㎝짜리 대형 노트가 쓰인 작품이 나왔다. 기성품이 아닌, 스코긴스가 직접 줄을 긋고 구멍을 뚫어 만든 수제 노트다. 스코긴스는 회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 2, 3개월 동안 노트를 만든다. “보통의 캔버스와 달리 노트는 누구에게든 친숙한 대상이죠. 빈 노트는 그 자체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그는 2002년부터 17년간 노트 연작을 이어 오고 있다.
스코긴스는 친숙한 소재와 주제에 천착한다. 누구에게나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예술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캔버스보다는 종이 노트, 유화 물감보다는 색연필, 크레파스, 연필을 사용한다. 인물의 얼굴을 ‘스마일 이모지’로 단순화하거나, ‘항상 당신의 영웅이 될게요(I will always be your hero)’ 같은 짧은 문장을 반복해 적어 넣곤 하는 것은 관람객에게 익숙함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스코긴스가 자신의 작품에 새기는 이름 ‘마이클 S(MichaeL S.)’는 그의 ‘페르소나’다. 그가 가장 솔직하고 순수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는 “아이 같은 솔직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마이클 S’는 내게 소중한 페르소나”라고 했다. 작가 사인에도 ‘아이 감성’을 담았다. 어릴 때 쓰던 글씨체를 연구해 사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품의 천진한 외형과는 달리, 스코긴스는 상당히 무거운 이슈를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어그러진 미국 백악관의 모습, 권력의 언론 탄압을 주제로 한 작업들이 대표적이다. “제 페르소나는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으니, 주제가 한정돼 있지 않아요. 특히 미국을 둘러싼 정치, 국제적 이슈에 관심이 많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해서요.”
그런 스코긴스가 이번 전시 주제로 ‘가족’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의할 만큼 가족애를 중시하는 한국 정서에 감명을 받았다”며 “소중한 딸아이가 얼마 전 첫돌을 지나며 더없는 행복감을 느낀 경험도 영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주 광범위한 범위의 가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꾸렸다”며 “내 곁의 친구, 같은 세대를 사는 사람 모두가 다양한 의미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작 중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는 내용의 회화들이 포함돼 있다. 전시는 6월 7일까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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