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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수십억 사기도 처벌 못해... 친족상도례 적용 범위 축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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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수십억 사기도 처벌 못해... 친족상도례 적용 범위 축소해야”

입력
2019.05.13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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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범죄통계상 피해자와 친족 관계인 범죄 피의자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경찰범죄통계상 피해자와 친족 관계인 범죄 피의자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해외투자업무를 하다가 두바이 왕족을 알게 됐다.” A씨는 외삼촌 B씨에게 자신의 ‘국제적 인맥’을 자랑하며 투자를 권유했다. 두바이 왕족이 투자하는 헤지펀드가 있는데 여기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A씨는 자신의 왕가 인맥을 통해 싼값에 금괴를 사들여 되팔 수도 있다고 했다. B씨는 A씨의 말을 믿고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74회에 걸쳐 모두 16억 8,225만원을 A씨에게 보냈다. A씨는 이렇게 B씨 지인 등 모두 10명에게 45억가량을 뜯어냈다.

하지만 외삼촌을 상대로 한 A씨의 사기는 처벌 대상이 되지 못했다. 두바이 왕족과 친분이 없는 A씨가 넘겨받은 돈으로 헤지펀드에 투자하거나 금괴를 사들일 의사가 없는 것은 다른 피해자와 똑같았지만,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처벌을 면하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1월 “A씨가 주위 사람들과의 인적 신뢰관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사기 범행을 계속했다”며 A씨에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외삼촌 B씨에 대한 범행은 공소 자체를 기각했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의 재산 다툼은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해결할 문제”라는 취지로 사기ㆍ공갈ㆍ절도ㆍ횡령ㆍ배임ㆍ권리행사방해ㆍ장물 등 7개 범죄에 대해서는 친족의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 특례 조항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간에 발생한 사기나 절도 등은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금액이 수십억에 달하는 사기 범죄도 처벌 대상에서 빠진다는 점에서 친족상도례가 오히려 친족 간 사기 등 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께 살지 않는 먼 친족의 경우도 7가지 범죄는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하다 보니 ‘8촌 형제’와 같은 먼 친척 간 범죄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서울동부지법은 20억원에 상당하는 주식을 명의신탁 받아 보관하다 반환을 거부해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C씨에 대해 지난해 5월 검찰 측 공소 자체를 기각했다. C씨와 피해자는 동거하지 않는 8촌 형제 사이라 피해자의 고소가 필요한데, 고소 시점이 친고죄 고소기간인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을 초과했다는 이유였다.

친족간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친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수는 2011년 2만 1,751명에서 2017년 4만 46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는 가족 간 유대관계가 강해 친족 간 범죄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8촌 형제’처럼 요즘은 거의 의미가 사라진 친족도 있다”며 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당장 폐지하는 게 어렵다면 친족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적용 범죄를 조정하는 방향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당장 폐지하면 가족 간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속이는 행동이 포함되는 사기 범죄부터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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