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부당 대출 의혹 개요. 그래픽=김경진기자

한국투자증권(한투)의 발행어음 자금 부당대출 의혹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이 거듭 미뤄지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제재 심의를 맡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두 번째 회의에서도 결정을 보류하면서 사건을 조사한 금융감독원에 대량의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이런 이례적 조치를 두고 증선위가 단순한 징계 수위 결정을 넘어 금감원의 위법 판단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여러 곳의 로펌을 동원한 한투의 적극적 소명이 통하고 있다는 분석 한편으로, 부당대출 수혜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는 SK가 사실상 소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최대 쟁점인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개인 대출 여부에 어떤 최종 판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번 사안이 SK의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으로 번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상 뒤집은 증선위의 징계 보류

11일 금융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열린 증선위 정례회의에선 한투 부당대출 제재 안건을 두고 위원들 사이에 3시간 넘는 격론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증선위는 지난달 19일 첫 번째 회의에 이어 또 한 번 한투 징계수위 결정을 보류하면서 금감원에 대규모 자료를 요청했다. 당국 안팎에선 증선위의 자료 요청이 한투와 최 회장 개인이 맺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설계에 대한 금감원의 판단 근거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증선위는 오는 22일 회의를 열고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앞서 금감원은 한투의 대출거래가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염두에 뒀지만, 금융위가 “법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는 자문기구(법령해석심의위원회) 의견을 제시하면서 결국 기관경고 수준의 경징계 안을 증선위에 상정했다. 그렇게 ‘성의’를 보인 만큼 징계안이 쉽게 통과되리라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선위의 행보는 징계 수위가 아니라 사건 자체를 다시 따져보겠다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증권사 특수목적법인(SPC)의 SK실트론 지분 보유 현황. 그래픽=김경진기자
◇최태원 회장 개인대출 여부가 관건

증선위의 거듭된 판단 보류에 시장은 금감원의 ‘유죄’ 판정이 뒤집힐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사건의 본체인 최 회장과 한투의 TRS 계약에 대해 “최 회장에 대한 개인대출”이라고 본 금감원의 판단이 유지될지가 관건이다.

앞서 2017년 8월 한투는 특수목적법인(SPC) ‘키스아이비제십육차’를 통해 최 회장과 SK실트론(구 LG실트론) 지분에 대한 만기 5년의 TRS 계약을 맺었다. SPC가 SK실트론 지분 19.4%를 1,672억원에 사들이되 최 회장이 SPC에 일정 금리를 제공하고 해당 지분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 또는 손실분을 가져가는 내용이다. 사실상 최 회장이 SK실크론 지분을 인수한 효과를 낸 셈이다.

문제는 SK실트론 지분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된 2,000억원어치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에서 발생했다. 한투가 보증(신용보강)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SPC 명의로 발행된 이 채권은 SK실트론 지분을 유동화한 만기 3개월짜리 단기 사채로, 총 20회(5년)에 걸쳐 만기가 돌아오면 같은 종류의 신규 ABSTB를 발행해 차환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28일로 예정됐던 3회차 차환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뤄지지 않았고, 한투는 신용보강 약정에 따라 2,000억원가량을 투입했는데 여기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사용됐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한투가 자본시장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TRS 계약을 통해 사실상 한투가 5년 동안 최 회장에게 일정 금리를 받고 ABSTB로 조달한 자금을 대출해주는 구조였는데, 신용보강 과정을 거치면서 발행어음 자금이 최 회장 개인에 대한 대출금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발행어음은 개인 대출 목적으로 발행할 수 없다. 한투는 이에 맞서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법인인 SPC에 제공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투 ‘과잉대응’엔 이유 있다?

금융사 제재의 1심격인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내린 결론을 증선위의 ‘2심’이나 금융위의 ‘최종심’에서 문제 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한투의 강력한 변론이 증선위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투는 현재 법무법인 3곳을 통해 강도 높은 법률 대응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감원이나 증권업계 일각에선 한투의 소명 활동이 과도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한투가 이미 금감원 제재심 과정에서 적극적 변론을 통해 제재 수위를 경징계 수준으로 대폭 낮춘 터라 더 이상 소명 활동을 펼칠 유인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예 제재를 받지 않는 게 목표라면 모를까, 징계 수위를 낮게 매긴 상황에 비춰봤을 때 대응 수준이 과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한투가 사실상 SK를 대신해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이 최 회장에 대한 불법대출로 결론이 날 경우, SPC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이 최 회장 소유로 간주되면서 최 회장과 SK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이슈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SK실트론 지분에 대해 한투(19.4%)뿐 아니라 삼성증권(10%)과도 TRS 계약을 맺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그룹에서 총수일가 지분이 20%를 초과하는 비상장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데, SK실트론의 경우 두 증권사 측 지분을 합치면 30%에 가깝다. 특히 SK실트론은 지난해 매출 1조3,361억원 중 29%에 달하는 3,935억원이 내부거래에 해당한다. 규제 대상 기업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전체 매출액의 12% 이상이면 총수일가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부과나 검찰 고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SK 측은 “SK실트론의 SK하이닉스 공급물량은 실트론 인수 전후로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웨이퍼 공급업체가 많지 않아 계열사라고 해서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불공정거래를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