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베네수엘라 난민이 밀려드는 콜롬비아 국경지역 ‘쿠쿠타’를 다녀왔다. 원래 이곳은 중남미의 해방자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다리를 두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양국 국민이 활발하게 왕래하고, 교역해 온 지역이라고 한다. 지금은 타치라 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에 베네수엘라로부터 남미 인근국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난민ㆍ이주민의 행렬이 가득하다.
하루 평균 2만5,000명의 베네수엘라인이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현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가 다리를 엄격히 통제하는 탓에 많은 이주민이 타치라 강을 헤엄쳐 건너오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지친 얼굴로 콜롬비아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2017년부터 본격화된 베네수엘라 이민자가 360만명에 달한다. 시리아나 예멘의 난민ㆍ이주민 발생 이후로 최대 규모로 보인다.
현재 이곳에서는 유엔난민기구(UNHCR)를 비롯, 세계식량계획(WFP), 국제적십자사(ICRC) 등 많은 국제기구와 중남미의 종교 단체, 국제 NGO 등이 음식과 숙소,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주민 정착 안내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국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했다. 급식소에는 베네수엘라에서 날마다 강을 건너 와 배고픔을 해결하고는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는 일일 이주민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쿠쿠타’는 원래 50여년간 이어진 내전을 피해 떠났던 많은 콜롬비아 피난민이 귀환해 정착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이 지역에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콜롬비아 내전 피난민의 정착을 돕는 지역 공동체 지원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역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의 경제적 자립 역량을 키우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당초 필자는 우리 ODA 사업의 현황을 확인하고자 이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베네수엘라 난민의 유입 현장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콜롬비아가 베네수엘라 난민을 심리적인 거리감 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가 ‘그란 콜롬비아’라고 불린 한 국가였던 역사적 배경도 있겠지만, 필자가 만난 콜롬비아 정부 인사나 피난민촌의 콜롬비아 주민들은 베네수엘라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쿠쿠타’의 우리 ODA 사업 현장에서는 콜롬비아 피난민과 베네수엘라 이민자가 가내 수공업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고, 콜롬비아 정부 인사는 베네수엘라 이민자가 콜롬비아내에 사회ㆍ경제적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난민ㆍ이주민 문제는 주변국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주로 난민ㆍ이주민을 수용하는 주변국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나라도 그간 세계적 인도적 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에 항상 힘을 보태왔다. 이번 베네수엘라 인도적 위기에서도 우리 정부는 콜롬비아, 페루 등 주변국을 통해 보건서비스, 난민지원 시스템 구축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도적 지원 규모는 우리의 GDP 규모나, 각국의 경제규모에 따라 결정되는 유엔 기여금 규모에 비해 아직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로 ODA를 제공하는 국가들도 인도적 지원은 우리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올 해 우리 ODA는 3조2,000억원이 넘는데, 그 중 인도적 지원은 3% 수준이다.
현재 전 세계 1억명의 인구가 분쟁, 빈곤, 자연재난 등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인도적 위기는 한반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유엔은 북한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국제사회가 수많은 우리 국내 피난민들에게 인도주의의 손길을 건넸던 때가 있었다. 베네수엘라 난민에 기꺼이 손을 내민 콜롬비아를 보며, 우리도 전 세계 인도적 위기 상황에 더욱 힘을 보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오현주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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