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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 고향 울산은 ‘패싱?’

입력
2019.05.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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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충남 등에는 석유화학 대규모 투자 

 울산에선 KTX 환승센터 등 잇단 ‘퇴짜’ 

 롯데별장 국유지 무단사용은 울산의 보복? 

 사업성 뒷받침 여건 ‘당근’ 줘야 지적도 

롯데케미칼 미국공장 전경. 롯데그룹 제공
롯데케미칼 미국공장 전경. 롯데그룹 제공

 #1 쇼핑몰 영화관 등이 들어설 예정인 KTX울산역 복합환승센터 사업주체인 울산롯데개발은 최근 복합환승센터 개발을 포기했다. 또 롯데건설은 울산 북구 정자동 강동리조트에 콘도, 컨벤션, 실내ㆍ외 워터파크 건설 대신 레지던스 건립을 검토 중이다. 이 두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 울산시는 지역개발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2 롯데케미칼은 지난 9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에탄크레커(ECC), 이틸렌글리콜(EG)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31억달러(3조6,000억원)가 투자된 이 공장은 에틸렌 100만톤을 생산할 수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이 미국 현지에 대형 공장을 건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롯데그룹이 미국과 국내에 석유화학분야에서 잇따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나 울산에서는 반대로 일련의 사업을 연이어 지연ㆍ축소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울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부친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향이어서 롯데그룹에 대한 ‘보상심리’가 국내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에너지수도인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한 송철호 울산시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롯데케미칼이 울산이 아닌 휴스턴에서 차로 2시간 반 걸리는 루이지애나에 4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에틸렌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공장은 당시 이미 막바지 준공단계로, 롯데는 현지에서 최근 대규모 준공식을 가졌다.

롯데그룹은 이뿐 아니라 국내의 경우 현대오일뱅크과 롯데케미칼이 6대4로 2조7,000억원을 합작투자해 2016년 10월 말 충남 서산시 대산공단 50만㎡에 현대케미칼 공장을 준공했다. 합작회사인 현대케미칼의 HPC 콤플렉스 설비는 나프타를 사용하는 기존 NCC에 비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설비로 연간 75만톤의 에틸렌으로 폴리에틸렌 75만톤, 폴리프로필렌 40만톤을 생산해 전량 수출하게 된다.

롯데는 지난 2015년 10월 삼성그룹 화학 계열사인 SDI 케미칼부문과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을 2조 8,000억원에 인수, 울산에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BP 등 3개 공장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울산에는 의미 있는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동종 석유화학업체인 SK와 S-Oil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울산에 2017년 말부터 1조원을 투입해 VRDS(감압 잔사유 탈황시설) 건설 중으로 현재 완공단계다. 이는 투입인력만 3년간 76만명, 일 평균 2,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다.

S-OIL은 규모가 더 크다. 2018 8월 울산 온산에 연간 150만톤 생산 규모의 석유화학 원재료 생산설비를 갖추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를 검토 중으로 2023년까지 총 5조원 이상을 더 투자할 전망이다. S-OIL은 이를 위해 온산공장에서 가까운 40만㎡ 부지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매입했다. 2단계 프로젝트에서는 연평균 270만명, 상시 고용 400명 등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는 석유화학부문에 신규 투자는 커녕 오히려 울산에서 벌여오던 사업마저 접거나 축소하고 있다.

롯데는 4월 KTX울산역에 복합환승센터 건립 대신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는 설계변경을 울산시에 냈다. 롯데는 지난 2015년 2,52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이 사업에 뛰어들어 부지를 울산시로부터 싼값에 사들였으나 사업추진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KTX울산역세권 개발사업의 핵심인 복합환승센터는 7만5,480㎡ 부지(연면적 18만1,969㎡)에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주차대수 3,135면과 아울렛, 영화관, 쇼핑몰이 입주할 예정이었다. 서부권의 개발 촉진과 동남권 광역교통중심지 역할을 기대하며 헐값에 부지를 넘겼던 울산시로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 강동권 관광의 핵심시설인 강동리조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대를 관통하는 울산외곽순환도로가 예타면제사업으로 결정되는 등 상황이 좋아졌지만, 롯데는 위락시설 대신 우선 돈이 되는 레지던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일대 지역개발은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울산시로서더 화나는 상황은 롯데그룹에서 사업결정권을 가진 책임 있는 인사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이와 관련 “실무자급 임직원들만 간혹 울산시를 찾고 있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실효성이 뒷받침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최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대암댐 인근 롯데별장이 환경부 소유 국유지 2만2,718㎡를 2003년부터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흘러 나온 것은 울산시의 롯데에 대한 불만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는 분석이다. 애향심이 각별했던 신 명예회장은 1970년 울산공단 용수공급을 위해 대암댐이 건설되면서 고향 둔기마을이 수몰되자 롯데별장을 만들어 2013년까지 매년 5월 마을 잔치를 열었다.

[PYH2019050809680005700] <YONHAP PHOTO-2369> 국유지 불법 사용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장
[PYH2019050809680005700] <YONHAP PHOTO-2369> 국유지 불법 사용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장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 명예회장은 주민 초청행사의 참석 인원이 늘어나 해당 국유지를 일부 사용했고, 평소에는 지역주민들이 단체 행사 목적으로 즐겨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 일종의 지역사회 기여 차원으로 변상금을 개인적으로 감수해 왔다”고 해명했다.

한편 롯데그룹의 울산 투자 축소ㆍ기피현상에 대해 사업성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KTX울산역 복합환승센터 ‘좌초’의 경우 최근 동해남부선 복선전철 개통이 임박해짐에 따라 KTX울산역 이용승객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른 사업성 저하가 원인인 만큼 다른 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져 단순한 애향심에 기댄 투자유도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생리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울산시의 ‘당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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