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0시 10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법 408호 법정.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둔 날이었건만 법정에 들어서는 이들은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스님, 포교부장 가섭 스님, 박기련 동국대 법인사무처장 등 불교계 인사들이었다. 한국 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포교원장은 전국 신도를 관리하는 곳으로 종단 내 서열 2위의 자리로 꼽힌다. 그런 지홍 스님이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차 공판이 열린 것이다.
지홍 스님은 자신이 창건주로 있던 송파구 사찰 불광사의 유치원 공금 수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홍 스님과 유치원 원장 임모씨가 공모해 유치원 이사장으로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상근 직원으로 이름을 올려 2013년 이후 1억8,200여 만원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의 임원 중 상근하지 않는 임원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의혹이 제기됐을 때 지홍 스님은 불광사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사찰의 가장 큰 스님) 자리를 내놨다. 창건주 자격 등 불광사 내 모든 권한과 권리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제출한 뒤 절을 떠났다. 하지만 조계종 포교원장 직은 유지하고 있다. 지홍스님 측은 이날 검찰의 공소 사실에 대해 “부인하겠다”라고 밝혔다.
방청석에 있던 한 불교계 인사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계 인사 들이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생수 ‘감로수’ 상표권과 관련해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대한불교조계종지부로부터 고발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조는 하이트진료음료와 함께 ‘감로수’라는 상표의 생수 사업을 진행하면서 로열티(상표 사용 수수료) 등 명목으로 5억 7,000만원을 제3자인 주식회사 ‘정’에 지급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정’은 체조선수 출신인 자승스님의 동생 이모(62)씨가 2012년부터 3년 동안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회사다.
자승 스님의 상좌(上佐ㆍ스승의 대를 이을 승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인 A스님 역시 배임수재 혐의로 서울북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스님은 조계종 산하 중앙승가대 안암동 학사 개축 사업과 관련해 수천 만원을 보시금 명목으로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계사도 국고 13억 원을 지원받아 지은 외국인 전용 템플스테이관을 공양품 매점, 사무실, 대형금고 등 부당하게 용도를 변경해 활용했다는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했다.
이 때문에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국 불교개혁행동 상임대표는 “고통에 빠진 이 세상을 편안하게 하겠다고 오신 게 부처님인데 지금 조계종단은 자신의 탐욕만 해결하려고 한다”며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종단 고위직들이 참회를 하고 부정한 문제에 관련해서 재판 받고 있는 고위직 스님들부터 모두 깨끗하게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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