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70)가 자신의 부친이 제국주의 시절 징병된 일본군이었음을 처음 고백하며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과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한국에서도 독자층이 두텁고,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도 그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무라카미는 10일 발간된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6월호 기고에서 자신의 부친이 20세이던 1938년 징병돼 중국에 배치된 뒤 소속 부대가 저질렀던 만행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29페이지 분량의 ‘고양이를 버린다-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야구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도 담았다.
에세이에서 무라카미는 “초등학생 때 부친이 소속됐던 부대가 포로를 참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군도(軍刀ㆍ군인의 칼)로 사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것도 없이 어린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낙인으로 찍혔다”고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기분으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군인이면서 승려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혼에도 큰 응어리로 남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이어 “아버지의 마음 속에 오랜 기간 짓눌려 있던 것을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승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무리 불쾌하고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있더라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것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무라카미는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이번 에세이의 제목에서부터 반영했다. 그는 에세이 첫머리에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그 고양이가 와 있었다는 일화를 담았다. 직접 설명하진 않았지만 버리려 했던 고양이는 과거 일제가 저지른 과오를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양이 일화를 통해 과거의 잘못은 외면하고 버리려 한다고 해도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무라카미는 이전에도 자신의 신념을 뚜렷이 드러낸 적이 몇 차례 있다. 대표적인 게 2017년 발표한 ‘기사단장 죽이기’의 한 대목이다. 여기엔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이 대화를 나누던 중 난징(南京)대학살에 대해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 10만~40만명을 죽였다”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일본 극우파의 공격 대상이 됐다. 무라카미는 지난 2월 프랑스 팬들과의 만남에서도 “바른 역사를 전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살아가는 방식이어야 한다”면서 “자기 나라에 좋은 것만을 역사로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에는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라카미는 “우리들은 광대한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 중 이름 모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도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방울 빗물마다 역사가 있고 그것을(역사를) 이어나가야 할 한 방울 빗물의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무라카미는 부친과 관련해서는 “관계가 굴절돼 20년 이상 얼굴을 보지 않았다가 2008년 돌아가시기 조금 전에 ‘화해 같은 것’을 했다”면서 “부친의 죽음 뒤 5년에 걸쳐 주변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의 군대 생활 이야기를 조금씩 들었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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