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한 한미 워킹그룹 회의가 10일 서울에서 열렸다. 대북 정책 검토ㆍ조정 실무 회의체인 워킹그룹은 당초 이번 회의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조율하고, 회의 모두발언과 약식 기자회견 및 브리핑 등을 통해 관련 성과를 공개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두 취소됐고 회의는 완전 비공개로 진행됐다. 참석자 전원이 발언을 아끼는 모양새였다. 회의의 무게중심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쏠렸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은 최근 방북 조사 후 나온 유엔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쌀, 옥수수, 콩 생산량이 12~40% 가까이 줄었다. 식량 수요는 575만톤 남짓인데 생산은 417만톤 정도여서 158만톤 이상이 부족하다. 수입과 국제원조를 감안해도 136만톤 이상이 모자란다. 올 초부터 매달 1인당 식량 배급을 전보다 20% 적은 300g으로 줄였다. 전체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 불안 상태라고 한다.
정부가 거듭 식량 지원 방침을 밝히고 미국도 이를 용인한 데에는 인도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상황을 관리하려는 목적도 있다. 우리로서는 과잉 생산된 쌀 재고를 줄여 쌀값을 안정시키고 보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본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지원이 논란에 휘말리기 쉬운 정책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식량 지원이 있을 때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보다 당 간부의 배를 채운다거나 군 비축미로 흘러 들어간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긴장을 조성하는 상황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 대화가 기로에 설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대북 제재가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에 긴장 조성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미사일 대 쌀 퍼주기’ 구도가 돼서는 곤란하다. 인도적 식량지원의 원칙은 세워 놓되 미사일 발사 국면 전개 상황을 보아가며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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