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때가 왔다. 아무도 좋아한다고 볼 수 없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았을 식재료, 닭가슴살을 ‘세심한 맛’에 등장시킬 때 말이다. 물론 나도 피땀 어린 ‘닭가슴살의 시기’를 거쳤다. 대강 헤아리더라도 7,8년은 하루에 한 끼를 닭가슴살로 먹었다. 요즘은 잠정 은퇴 기간이라 가까이하지 않지만 때로 닭가슴살을 하루 세 끼, 일 년 내내 먹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기도 한다. ‘남 이야기가 아닌데?’라고 생각할 독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닭가슴살 먹기는 의외로 방대한 여정이다. 고단백 저열량이라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에 가볍게 발을 들였다가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특히 익힌 걸 사먹으면 그러기가 쉽다. 조리는 몇 배 번거로운 반면 확실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니 제품의 선택도 굉장히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사먹다 보면 한계가 의외로 빨리 찾아온다. 스스로 익혀 먹는 만큼이나 많은 기성품을 사먹어 본 결과 공통점이 있었으니, 닭가슴살의 약점인 ‘무맛’을 무마하기 위해 간이 대체로 강했다. 짠맛이나 감칠맛이 강하다면 괜찮을텐데 단맛이 강한 것이 다수였다. 여기에 재료 특유의 냄새를 가리기 위해 ‘스모크 후레바’ 같은 가공육용 향신료까지 쓰면 절반 이후로는 닭가슴살 자체보다 맛과 향이 더 거슬려 먹기 힘들어진다. 종종 딸려오는 소스도 크게 보면 닭가슴살 자체에 낸 맛과 같은 길을 걸으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썩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엄청나게 내키지는 않지만 닭가슴살의 ‘집밥’화를 조심스레 권해보는 것이다. 당연히 번거롭고 식재료 자체의 한계 때문에 열심히 조리를 갈고 닦아도 보람을 많이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대신 맛을 직접 관리할 수 있으니 덜 질려 조금 더 오래 먹을 수 있다. 또한 닭가슴살 같은 재료를 적당히 익힐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다른 식재료쯤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극기훈련이나 가파른 산행 뒤에 (잠깐이나마) 일상의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달까.
◇퍽퍽한 닭가슴살 조리법
닭가슴살의 조리는 쉽지 않다. 어감은 괜찮지만 단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표현인 ‘퍽퍽살’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방도 전혀 없고 다리나 날개에 비하면 운동도 전혀 하지 않으니 자체의 맛도 거의 없다. 닭이 운동을 해도 가슴살은 복지부동이므로 맛에는 보탬이 안 된다는 말인데, 애초에 현대 농ㆍ축산업이 고효율의 빠른 성장을 추구하니 닭 자체가 운동을 거의 안 하지 않는다. 운동을 못하는 동물이 운동을 원래 안 하는 부위이니 닭가슴살은 맛이랄 게 없으며 금방 과조리되어 퍽퍽하고 뻣뻣해지기 쉽다.
물론 닭가슴살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건강식이 아니더라도, 즉 일상의 맥락에서 충분히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령도 있다. 다만 지방 등 맛을 돋워주기 위한 다른 식재료가 적극적으로 거들어야 하므로 열량 섭취의 증가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고단백 저열량이라는 닭가슴살의 진가만을 고집하는 순수주의자는 불경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어쨌든 손질 요령부터 살펴보자. 닭가슴살을 포장에서 꺼내 겉면의 물기를 종이 행주등으로 말끔히 걷어내고 냉동실에 30분 둔다.
겉만 살짝 얼어 칼질하기가 훨씬 편해진 닭가슴살을 도마에 올리고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힘을 적당히 주어 누른다. 닭가슴살 자체가 미끄러지지 않을뿐더러 칼날의 움직임에도 저항하지 않아 안전해진다. 이제 칼날을 닭가슴살과 평행하게 눕혀 길이 방향으로 넣는다. 그렇다, 닭가슴살을 수평으로 이등분하는 것이다.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칼날을 서서히 움직이면 닭가슴살이 질긴 식재료는 아니므로 어렵지 않게 반으로 가를 수 있다. 칼날이 닭가슴살의 5분의 4 정도 들어가면 손을 떼고 닭가슴살을 펼친 뒤 아직도 붙어 있는 부분을 칼로 썰어 완전히 이등분한다.
◇볶아먹거나 튀겨먹거나
기본 손질이 끝났으니 한 번씩만 손질을 더 거치면 밥 반찬 역할을 충실히 하는 닭가슴살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볶음을 위해서는 닭가슴살을 채썬다. 수평으로 완전히 반을 가른 닭가슴살을 다시 겹친 뒤 30도 각도로 어슷썰어 최대한의 길이를 확보한다. 간장, 맛술, 설탕, 마늘, 생강, 굴소스 등을 더해 양념을 만들어 닭가슴살을 재우고 채소를 손질한다. 어떤 채소든 가능하지만 브로콜리, 양송이, 파프리카, 양파 등 센 불에 잠깐 볶아 먹기 좋은 것들이 닭가슴살과 잘 어울린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센 불에 올려 충분히 달군 뒤(기름이 반짝이며 흐른다) 각 채소와 양념에 재워둔 닭가슴살을 따로따로 볶아 두었다가 마지막에 한데 합치고 남은 양념을 끼얹어 조금 더 익혀 마무리한다. 채소 닭가슴살 볶음이 완성되었다.
조리 시간을 좀 더 줄이고 싶다면 수평으로 반 가른 닭가슴살을 팬에 지진다. 그냥 지져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지만 닭가슴살이 평평한 식재료는 아니므로 표면을 좀 더 일정하게 만들어 주는 게 좋다. 도마에 놓인 닭가슴살을 플라스틱 랩으로 덮고 냄비 바닥이나 통조림 등, 무게가 좀 나가고 둥글넓적한 바닥을 지닌 조리 도구 등으로 내려쳐 납작하게 펴준다. 적당히 평평해지는 수준에서 그칠 수도, 아니면 최대한 빨리 익도록 종잇장에 가깝게 뭉갤 수도 있다. 소금과 후추로 간한 뒤 뜨겁게 달군 팬에 그대로 지져 먹어도 좋고 밀가루(1단계) 계란물과 빵가루(2단계)의 옷을 입혀 커틀릿 혹은 ‘까스’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모든 요리가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닭가슴살이라면 옷을 더 입을수록 맛있어질 가능성이 높다.
◇닭가슴살 제대로 즐기려면 통째 저온조리해야
닭가슴살의 정도를 걷고 싶다면 역시 통으로 익혀야 제맛이다. 염지를 이용해 은근히 삶는 레시피를 소개해보자. 네 쪽 기준으로 간장 125㎖, 소금 4큰술, 설탕 2큰술을 준비한다. 넉넉한 냄비에 물 4리터, 소금, 설탕을 더하고 닭가슴살을 담아 뚜껑을 덮고 그대로 30분간 둔다. 간장과 소금을 탄 염지액이 삼투압의 원리에 따라 닭가슴살에 맛을 들이고 수분도 보충한다. 시간이 다 지나면 그대로 중불에 올린다. 물의 온도가 골고루 올라가도록 가끔 휘저으며 확인해섭씨 80도까지 오르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불에서 내린다. 닭가슴살의 내부 온도가 70도까지 오르도록 15~20분 그대로 익힌다.
닭가슴살을 통으로 익히는데 익숙해졌다면 끝판왕인 저온조리도 시도해볼만하다. 조리가 어려워서 끝판왕인가? 아니다. 저온조리는 일단 시작하고 나면 사람 손을 전혀 거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러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준비과정이 좀 번거롭고 귀찮으며 별도의 도구도 필요하다. 정석이라면 저온조리는 ‘수 비드(Sous Videㆍ진공 포장)’라는 명칭처럼 재료를 진공포장해 특정 온도의 물(60~70도 수준의 저온)에 완전히 담가 익힌다. 따라서 진공포장기 및 전용 비닐, 물 가열기가 필요하다. 최대한 타협해 진공포장기와 전용 비닐 없이, 재료를 지퍼백에 담아 공기를 뺀 뒤 물에 담글 수는 있지만 그래도 가열기는 필요하다. 지퍼백이든 진공 포장이든 닭가슴살을 담았고 가열기도 갖추었다면 요리는 끝이다. 60도에서 네 시간씩 익혀 건지면 되려 너무 부드러워서 어색한 닭가슴살이 된다.
통으로 익혔다고 닭가슴살을 굳이 통으로 먹을 필요까지는 없다. 오랜 수련의 결과, 닭가슴살은 최대한 가지런히 썰어 같은 양을 천천히 먹는 편이 더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따라서 조각을 내야 하는데 꼭 지켜줘야 할 대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결대로 쪽쪽 찢지 않는다’이다. 모든 육류는 고기, 즉 근육을 지나가는 결을 최대한 짧게 끊어줄수록 부드러워 먹기 편해진다. 결이 세로 방향으로 너무나도 선명하게 나 있으므로 익힌 다음에는 그대로 쪽쪽 찢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지만 그럼 결국 원래 질겨지기 쉬운, 그리고 이미 질겨졌을 가능성이 높은 고기를 더 질기게 먹는 셈이 된다. 백숙 혹은 삼계탕을 특히 자칭 토종닭으로 끓이면 가슴살이 씹어도 분해되지 않고 입 안에서 뭉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과조리와 결대로 쪽쪽 찢기가 일궈낸 쾌거이다. 따라서 언제나 닭가슴살 길이의 반대 방향으로 썰어 먹는다.
◇간 닭가슴살은 고명처럼 얹어서
이도저도 다 귀찮고 성가시다면 최후의 보루로 갈아 놓은 닭가슴살이 있다. 갈아 놓은 것을 익히면 더 퍽퍽해지지 않을까? 맞다. 어느 정도 사실인데, 의외로 장점이 꽤 많다. 일단 조리 시간이 확 줄어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알갱이가 잘아, 설사 과조리가 되더라도 먹기에는 덜 불편해진다. 또한 조리 과정에서 다른 채소나 조미료 등을 더해 맛을 보탤 수도 있다. 가장 적절한 조리법은 초보자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볶음이다. 마늘 한두 쪽을 강판에 곱게 갈거나 다져 준비한다. 넉넉한 크기의 논스틱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간 마늘을 더해, 반투명해지고 단맛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약불에서 볶는다. 간 닭가슴살을 팬에 더하고 나무로 만든 볶음 주걱으로 팬 전체를 덮는다는 느낌으로 골고루, 한 켜로 펴 준다. 소금과 후추, 간장으로 간하고 팬의 바닥에 닿은 부분에서 붉은기가 가시면 밭을 갈아 엎듯 전체를 뒤집어 조금 더 볶는다.
이처럼 ‘소보로’ 같은 느낌으로 보슬보슬하게 볶은 닭가슴살은 그냥 퍼먹거나, 밥이나 면, 삶은 당근이나 데친 브로콜리 같은 채소에 고명으로 얹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말하자면 온갖 음식에 자신을 속이듯 닭가슴살을 슬쩍 더해 먹기에 좋은 요령이다. 마늘로 기본 맛을 내지만 양파나 샐러리, 당근 같은 채소를 잘게 썰어 볶으면 맛이 한결 더 풍성해진다. 기름기가 전혀 없는 고기이므로 적절한 감칠맛을 더해주는 게 핵심이니 간장뿐만 아니라 굴소스 같은 조미료를 써도 좋다.
◇뉴욕 호텔에서 온 닭가슴살 샐러드
통으로 익힌 닭가슴살을 요리로 승화시키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샐러드가 들이는 품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 닭가슴살을 깍둑썰어 고열량도 상관 없다면 마요네즈, 아무래도 이렇게 익힌 닭가슴살에 많은 열량을 보태기가 주저된다는 입장이라면 올리브기름과 식초(비네그레트)로 버무린다. 특히 마요네즈를 쓰는 ‘용자’라면 샐러리, 사과 등을 더해 유서 깊은 미국 뉴욕 호텔의 이름을 딴 ‘월돌프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그 밖에도 청포도 같은 과일이나 피칸 같은 견과류가 닭고기 샐러드에 잘 어울린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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