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설 때 다른 분이 합류하면 안 되고요, 계산도 한꺼번에 하셔야 합니다.”
9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미국 커피 프랜차이즈 ‘블루보틀’ 1호점 앞에는 200여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매장 안부터 건물 바깥 벽을 따라 이어진 줄의 끝에 서자, 직원이 “여기서부터는 2시간 기다리셔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대기 줄을 관리하는 직원만 서너 명 됐다. 지난 3일 문을 연 블루보틀은 개점 당일에도 새벽 5시부터 대기 행렬이 이어져 3~4시간은 기다려야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픈 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줄만 선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여러 제약이 뒤따랐다. 일단 줄을 선 후로는 다른 사람이 합류할 수 없고, 여러 명이 일행일 경우엔 꼭 한 사람이 대표로 계산해야 했다. 불평이 쏟아질 만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한 20대 연인은 “우리가 자초한 일 아니냐”며 웃어 넘겼다.
◇몇 시간씩 줄 서서 마시는 음료
블루보틀의 인기는 희소성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데다 1호점이라는 높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가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카페라떼가 6,100원인데, 원두를 업그레이드하면 7,000원이 넘는다. 보통 커피전문점의 카페라떼가 4,000~5,000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비싼데도 매장에는 고객들이 넘친다. 블루보틀 관계자는 “20~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며 “사진도 자유롭게 촬영하며 캐주얼한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들 밀레니얼 세대는 블루보틀 같은 희귀 아이템을 선점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하나의 놀이 문화로 즐긴다. 이날 매장을 찾은 대학생 이태건씨는 블루보틀 간판 아래 테이블에 커피와 빵을 놓고 휴대폰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었다. 이씨는 “개인 블로그와 SNS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대학생 정가영씨와 김은주씨도 매장에서 서로를 찍어준 사진을 SNS에 공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블루보틀은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이다. 온라인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의미다.
지난 3월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1호점을 연 대만의 흑설탕 버블밀크티 전문점 ‘타이거슈가’도 줄을 서야 하는 카페다. 타이거슈가는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등 8개국에 진출했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실내 판매 매장이다. 다른 국가들의 매장은 테이크아웃 방식이다. 개점 두 달이 됐지만, 주말엔 여전히 한 시간 이상은 대기해야 주문할 수 있다. 이곳도 별다른 홍보 없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핫 플레이스’가 됐다. 대만의 흑설탕 밀크티 카페 ‘흑화당’(2012년 개점)과 차 카페 ‘더 앨리’(2018년)도 국내에 상륙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들의 영향으로 최근 외식업계엔 ‘흑당 음료’ 열풍까지 생겼다.
◇슬로우 카페라떼에 숨겨진 비밀
블루보틀은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제조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슬로우 커피’로도 유명하다. 카페라떼를 여러 잔 주문 받아도 한꺼번에 만들지 않고 한 잔씩 만든다. 커피에 넣는 우유도 한번에 다량 데우지 않는다는 얘기다. 블루보틀에는 다른 커피 전문점에는 없는 특이한 장비가 놓여 있다. 우유를 데우는 데 사용하는 용기(스팀 피처)를 뒤집어 바로 세척하는 기계다. 카페라떼를 만들 때 한 잔 분량의 우유를 데운 다음 스팀 피처를 바로 씻어내는 것이다. 즉 스팀 피처에 남아있는 우유를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블루보틀 측이나 블루보틀 커피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 일반적인 커피전문점은 대부분 여러 잔의 카페라떼를 한 번에 제조한다. 대게는 스팀 피처에 남아 있는 우유에 새 우유를 담아 데우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우유의 농도가 옅어지고 라떼 특유의 거품과 풍미가 사라진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업체 관계자는 “평일 점심 때처럼 분비는 시간대에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모두 정량의 우유를 사용하고 짧은 시간에 여러 잔을 만들기 때문에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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