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의 첫 장면. 창비 제공

차라리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면 좋으련만. 기분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채로 ‘나’를 뒤흔든다. “맙소사, 난 쓰레기야. 이제 아무 것도 못하게 됐어. 이렇게 쓸모 없는 사람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좋아하던 것들에 흥미가 없어지고, 잘해오던 일도 할 수 없으며, 기분도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말하자면, 기분이 없는 기분. 평생을 미워하던 아버지가 고독사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의 일이다.

30대 여성 혜진의 이야기를 담은 ‘기분이 없는 기분’은 어린이책 디자이너 출신인 구정인 작가가 처음 낸 만화책이다. 205쪽 분량에 군더더기 없는 흑백 그림체로 이뤄졌다. 딸, 남편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혜진이 아버지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혜진, 그리고 언니와 엄마에게 아버지는 골치덩어리였다. 별다른 직업도 갖지 않은 채 주식과 사업 궁리에만 몰두했고, 매번 실패했다. 외도에 가출을 거듭했으며, 혜진이 딸을 임신했을 때도 안부 한 번 묻지 않았다. 2년 전 아버지와 마지막 만남이 혜진은 그리 아쉽지 않았다.

'기분이 없는 기분'의 한 장면. 혜진은 아버지 죽음 이후의 일들을 모두 처리한 후 서서히 침잠한다. 창비 제공

스스로는 덤덤했다고 돌이키지만, 아버지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은 혜진에게 충격을 안긴다. 멸치액젓 냄새가 진동한다는 신고 때문에 시신을 발견했다는 경찰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부터, 구더기가 득실댄다는 아버지 방을 정리할 청소업체를 찾아보는 일까지 말이다. 혜진은 ‘숙제’를 끝마치고는 서서히 침잠한다. 길을 지나다가도, 침대에 몸을 누이다가도 문득 아버지를 본다. 바닥 없는 무기력이 찾아와 잠들 수도, 침대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된다.

이야기는 무겁지만, 책의 성격을 분류하자면 ‘위로서’에 가깝다. 아버지라는 존재,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천천히 꺼내놓고 인정하는 혜진의 분투기가 ‘나의 이야기’로 겹쳐 읽히기 때문이다. “어떨까? 정말 아버지 얼굴을 다시 본다면.” “뭐, 조금은 반가울…수도 있겠네요.” 혜진은 여러 달을 헤맨 끝에 잃어버린 기분을 되찾겠다는 의지로 정신과와 심리상담 센터를 찾고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기분이 없는 기분’을 낸 출판사 창비는 ‘나쁜 친구’(2012), ‘올해의 미숙’(2019)과 함께 이 책을 ‘여성 서사 만화’로 분류했다. “나는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보려고, 자꾸 괜찮다고만 했었나 보다. 마음을 아주 조금 열어 봤더니 역시나 불안하고 무섭다. 모르는 척하고 얼른 도로 닫아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고장 난 데를 고칠 수 없겠지.” 혜진의 다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내리는 처방이다.

 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창비 발행ㆍ204쪽ㆍ1만3,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