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주도의 대북 식량 지원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 식량 사정이 열악하다고 국제기구가 공식화한 데다, 미국 행정부도 ‘한국 정부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다. 통일부는 지급 규모, 시기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북 지원 명분을 쌓는 등 분위기 조성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추가 도발을 감행해 추진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식량 지원은 수혜자가 필요로 할 때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감안해 지원 시기, 규모,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백악관이 미국 정부가 인도적 지원 과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한국 정부 주도로 식량을 지원하는 쪽으로 구체적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대북 지원 방식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먼저 유니세프ㆍ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에 식량 지원을 요청한 만큼 한국 정부가 국제기구에 기금을 대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우선 거론된다. 다만 교착 상태에 있는 남북 교류ㆍ협력을 활성화하는 기회로 식량 지원 카드를 활용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거나 민관이 합동으로 제공하는 방식도 선택지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외교통일위 실무당정협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식량 지원 계획의) 장단점 같은 것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섣부르게 구체적인 안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거리 발사체 발사 닷새 만에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를 동해로 쏘며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부가 인도적 지원에 지나치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대북 정책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가 지난해 12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방한 당시 타미플루 제공 등 인도적 조치를 취하자고 합의했지만, 북측이 최종 답변을 주지 않아 무산된 전례도 정부가 더욱 신중을 기하게끔 하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구체적인 안은 북한과 어느 정도 교감이 된 이후에 발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는 또 대북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주 한국을 찾는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연철 장관과 면담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편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은 이날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현 시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도(共同)통신과 NHK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이날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본래 국민의 복리후생에 사용돼야 할 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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