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체에서 진행하는 24시간 기아 체험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함께 느껴보자는 의미의 행사였다. 하루에 먹는 끼니 3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식사 시간이 되자 배고픔을 참기가 어려웠다. 위에서 꼬르륵 소리가 마치 음식을 섭취하라는 신호처럼 들렸고, 뇌에서는 뭐든지 먹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동물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단식은 에너지 공급을 중단시키고 체내에 저장된 물질을 소모하게 한다. 따라서 단식은 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며 소화기관에 있는 미생물도 변화시킨다. 단식은 종교적 수행의 한 수단이 되기도 하며, 약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투쟁하기 위해 벌이는 최후의 행동이기도 하다.
예외적으로 자발적인 단식에 들어가는 동물들이 있는데 포유류 중엔 동면을 하는 곰과 다람쥐가 대표적이다. 조류 가운데에서는 펭귄이 자발적 단식에 들어가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펭귄은 바다에서 잠수를 통해 먹이를 섭취하는데, 번식기간 중 알을 품는 기간과 깃갈이 기간엔 육지에만 머물며 먹이 섭취를 하지 않는다. 특히 깃갈이를 하는 동안엔 영양 공급도 끊기지만 깃을 생산하기 위해 체내에 축적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게다가 남극의 추운 환경에 사는 펭귄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따라서 깃갈이 기간에 벌어지는 단식은 자발적이긴 하지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다. 펭귄은 생존을 위해 이 기간 동안 몸 안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쓰며 다시 먹이활동을 하기 전까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펭귄은 깃갈이를 위한 단식 기간을 어떻게 버틸까? 바위뛰기펭귄에 대해 연구된 바에 따르면 깃갈이 후 지방 대사와 관련해 간 조직의 비타민A 농도가 증가한 것이 관찰됐다. 이처럼 펭귄은 생리적 반응을 통해 체내 지방대사를 조절하며 단식 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적응했을 것이다.
2014년 호주 매건 듀어 박사는 호주 남쪽 섬에 번식하는 쇠푸른펭귄과 남대서양 영국령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는 임금펭귄의 분변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종 모두에서 깃갈이를 전후해 장내 미생물이 변한 것을 확인했다. 분석 논문을 읽으면서 ‘내가 연구하고 있는 남극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와 남대서양에 비하면 남극해는 훨씬 춥고 혹독한 환경이기 때문에, 깃갈이 기간에 펭귄들이 겪을 스트레스는 더 심할 것이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2월 말부터 약 2주 동안 깃갈이를 하며 단식에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1월 초 깃갈이 전에 먼저 펭귄을 포획해 총배설강(배설 기관과 생식 기관을 겸하는 구멍) 부분을 면봉으로 긁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깃갈이가 끝나갈 즈음 다시 같은 방식으로 샘플링을 했다. 이 두 면봉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보니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크게 변화한 것을 확인했다. 미생물 다양성에도 차이가 생겼으며, 숙주인 펭귄의 물질대사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였다. 우위를 점하는 미생물 가운데 특히 푸소박테리움균(Fusobacteria)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 균은 지방산의 하나인 뷰티르산(Butyrate)을 생산해 숙주의 면역과 체내지방축적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펭귄이 자발적인 단식에 돌입해 깃갈이를 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안, 뱃속에 있는 미생물들 역시 나름 안간힘을 쓰며 펭귄이 잘 버틸 수 있게 돕는 게 아닐까. 아직 어떤 매커니즘으로 미생물이 기능을 하는지 정확한 과정은 모르지만, 현재 연구 결과를 보면 체내 지방 대사에 기여하는 게 아닐까 추측된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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