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정훈 칼럼]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미래

입력
2019.05.10 04:40
29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가면 연못이 하나 있다. 황지 연못이다. 시내 한 중앙에 있는 연못임에도 놀랄 정도 맑은 물이 찰랑이고 있다. 이 연못 아래에는 물길이 여러 개 나있는데, 이 연못의 물은 옆 황지천으로 흘러 들어가 남하한다. 무려 510㎞를 내려간다. 그 끝에 삼각주가 있고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한 물은 남해 바다와 만난다. 황지연 연못은 경상도의 젖줄 낙동강의 발원지다.

남해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는 예로부터 역류하는 바닷물로 유명했다. 만조 때에는 바닷물이 강을 타고 내륙 깊은 곳까지 짠물이 올라와서 식수원을 위협하기도 했다. 낙동강 하구 인근으로 시집온 옛 새댁들 사이에서는 짠맛 나는 수돗물에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니 짠물 먹어 봤나?’라는 말로 며느리의 한풀이가 시작되곤 한다. 낙동강 하구 삼각주 지역의 강물이 얼마나 짰냐면 조선시대 때 이 삼각주에 소금을 굽는 염전이 있을 정도였다. 1987년 이 삼각주를 관통하며 준공한 낙동강 하구둑으로 강의 염도가 내려가긴 했지만, 삼각주 지역 지하수의 염도를 조사해보면 여전히 꽤 높게 나온다.

삼각주를 관통하는 하구둑의 바로 안쪽 지역은 대저2동이고, 좀 더 상류 쪽이 대저1동이다. 대저1, 2동 사이에는 부산 김해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이 대저 지역의 토양은 역류하는 바닷물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 염분기가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 지하수의 염도를 조사해 보면 4psu(practical salinity unit)를 넘어서기도 한다. 맛을 보면 맹맹한 듯 살짝 짠맛이 돈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연스럽게 염분과 다양한 미네랄이 작물에 흡수되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 지역의 특산물이 바로 대저 짭짤이 토마토다. 사람의 혀는 단맛에 짠맛이 결합이 되면 더 달게 느끼게 되는데,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맛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의 소금기와 다양한 미네랄을 살짝 머금은 토마토는 입안에서 더 달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긴 독특한 토질에서 자란 가장 특이한 작물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대저 짭짤이 토마토를 이야기한다.

대저 지역의 독특한 풍토는 우리가 흔히 먹는 똑 같은 품종의 찰토마토를 완전히 다른 토마토로 만든다. 프랑스에서는 작물 재배에 영향을 주는 각 지역의 독특한 풍토를 ‘떼루아(Terroir)’라고 부르고, 작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떼루아의 특성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을 중요히 여긴다. 프랑스 각지의 와인이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 다양한 특성이 유지되는 것은 떼루아에 기인한다. 대저 지역 특유의 떼루아 때문에 맛뿐만 아니라 외관도 대저 짭짤이 토마토와 찰토마토는 같은 품종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모습이다. 크기도 다르고 색도 다르다. 재배 방식에서 오는 차이도 있지만, 이것은 결국 떼루아가 만든 마법이다. 게다가 대저에서 재배하는 모든 토마토에 ‘대저 짭짤이 토마토’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대저 지역에서 생산하는 대저 토마토 중에서 당도가 8브릭스(brix) 이상 되어야 ‘대저 짭짤이 토마토’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다. 8브릭스 이하의 토마토는 ‘대저 토마토’라는 명칭으로 출하된다.

토마토에 ‘대저’를 붙이려면 대저1동과 대저2동에서 재배하여야 한다. 대저 토마토의 독특한 품질은 대저 지역의 떼루아에 비롯된 것이므로, 대저 지역이 아닌 곳에서 재배한 토마토에 ‘대저’라는 지리적 명칭을 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법적 근거가 농수산물 품질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리적 표시제’다. 대저 토마토는 지리적 표시제 농산물 제86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대저 토마토의 그 지리적 특성, 지역성, 역사성 및 유명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부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는 낙동강 하구 삼각주에 최첨단 산업단지인 ‘부산 에코델타시티’를 건설하는 것에 합의하고, 삼각주 일원 1,177만㎡ 부지를 개발 대상지로 확정했다. 이 부지에는 대저2동에서 토마토를 생산하는 100곳의 농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농가는 올 봄 마지막 수확 작업을 마치고 철거에 들어갔다. 철거로 사라지는 물량은 전체 대저 토마토 생산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 철거 대상 지역인 대저2동의 떼루아는 당도 8브릭스 이상의 대저 짭짤이 토마토를 주로 만들어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내년부터는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출하량이 절반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토부가 계획 중인 김해공항 확장사업이 확정되면, 대저1, 2동의 대부분이 공항 부지로 들어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특한 토마토를 생산하는 떼루아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떼루아는 오로지 낙동강 하구 삼각지 대저 1, 2동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재배지 확장은 불가능하다. 이제 이별 준비를 해야 할까. 대저 토마토의 제철은 3월부터 5월까지다. 지금이 올해 대저 토마토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시중에 가짜 대저 토마토가 너무나 많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정하는 지리적표시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 것만 진짜 대저 토마토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