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다, SF] <7>마거릿 애트우드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일보>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은 갑갑하다. 그것도 주인을 두 명이나 거친 중고 혼다자동차라면, 처음부터 대궐 같은 장소는 아니기 마련이다.”
실업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십중팔구 삶이 궁핍해진다. 가난은 서서히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유대를 좀먹는다. 결국, 실업은 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자극한다. 타인을 증오하고 자신을 혐오한다. 바로 이때야말로 그 사람이 가장 취약할 때다. 그를 파멸로 이끄는 유혹은 이틈을 놓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의 미국. 젊은 부부 스탠과 샤메인이 바로 이런 상태였다. 두 사람은 한때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듯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초래한 잇따른 불운이 두 사람을 덮치면서 그런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급기야 일자리까지 잃은 둘은 벼랑 끝까지 내몰려 최악의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낡고 작은 일본산 자동차는 두 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이다. 둘은 이 자동차에서 먹고 자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만약 이 자동차까지 없었다면 둘은 경제 위기가 낳은 살인, 강간, 약탈의 무법천지로 내던져졌을 것이다. 자동차를 방패로 남자는 헐값에 혈액을 파고, 여자는 술집에서 웃음을 팔면서 하루하루 연명한다.
이런 끔찍한 시간이 반복될수록 둘을 묶어 주던 사랑의 끈도 너덜너덜하게 해진다. 바로 그때 두 사람 앞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이 나타난다. 안전과 풍요를 보장하는 새로운 보금자리! 둘의 참여를 유혹하는 ‘컨실리언스/포지트론’ 프로젝트는 경제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떠오른 새로운 공동체 실험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은 한 달은 마을(컨실리언스)에, 다른 한 달은 감옥(포지트론)에서 살아간다. 마을에 사는 한 달은 시민이, 감옥에 사는 한 달은 죄수가 된다. “모두가 번갈아 한 달은 교도소 안에서, 한 달은 교도소 밖에서 지내는 것이니 공평할”뿐만 아니라, 마을의 한 집마다 두 쌍이 살 수 있으니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는 궤변.
결국 스탠과 샤메인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낡고 좁은 자동차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원할 때 깨끗이 씻고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여자는 말한다. “꿈이 이뤄진 것 같아!” 남자는 생각한다. ‘그건 진짜가 아니야 하지만 그녀의 흥을 깰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일 따위야 문제될 게 없다.
매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꼽히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런 기괴한 설정의 SF 소설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를 ‘실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내놓았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집을 잃고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미국 몰락한 중산층의 스산한 삶에서 소재를 얻었음이 분명한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운 면모를 짓궂게 헤집는다.
‘시녀 이야기’(1985년)로 유명한 애트우드는 SF나 스릴러 같은 장르 소설의 문법으로 현대 자본주의-가부장제 사회의 권력 관계를 폭로해 왔다. 독자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파격적인 설정이야말로 그의 장기다. ‘시녀 이야기’뿐만 아니라 ‘눈 먼 암살자’(2000년) 같은 작품은 밀레니엄의 첫 부커 상을 수상한 현대의 고전이다.
애트우드의 거장다운 면모는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예감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이상한 도시에서 스탠과 샤메인은 과연 어떤 일을 겪을까? 호기심에 못 이겨 책을 들고 만 당신을 위해서 힌트를 주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알쏭달쏭한 제목의 진짜 뜻을 알면 정말 심장이 멈출 듯 놀랄 것이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ㆍ김희용 옮김
위즈덤하우스 발행ㆍ596쪽ㆍ1만6,000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