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 회원과 노인들이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박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극적인 삶을 살아온 세대가 있을까? 이 세대는 일제강점, 분단, 한국전쟁, 지독한 가난과 독재, 이 모든 불행을 견디며 살아 왔다. 이 세대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녀 세대를 세상에서 가장 잘 교육받은 인재들로 키웠다.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산업화, 민주화, 자녀 세대를 위해 헌신했던 그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노인 세대의 절반이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라는데, 노인 빈곤율은 무려 43.8%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

노인 빈곤율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화폐(공로수당)로 월 10만원을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서울 중구청에서 구청장의 사진이 경로당에 걸리고, 노인들이 구청장의 손을 꼭 잡으며 자식들도 못한 일을 구청장이 했다고 감사해하고, 공로수당이 지급된 이후 동네 슈퍼와 정육점에선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를 구입하는 노인들이 폭증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노인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자식 교육에 헌신했던 노인 세대의 절반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빈곤에 신음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배신 행위의 결과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인 멕시코와 칠레의 노인 빈곤율이 24.7%와 16.3%에 불과하다. 더욱이 한국 노인의 고용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뭔가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됐다.

OECD 빈곤율이 자산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과대 평가됐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빈곤율을 다양한 방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노인 빈곤율은 한국과 달리 대단히 낮기 때문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한 그리스와 스페인의 노인빈곤율은 7.8%와 9.4%에 불과하다.

한국이 더 성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멕시코와 칠레를 보면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세대 간 형평성을 이야기하며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노인 세대가 젊었을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산업화와 미래 세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했던 사회가, 그 세대가 노인이 되니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가난을 인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왜 현재의 노인 세대만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지독한 가난을 견뎌내야 하는가.

자녀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듯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가족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겨우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양의 책임을 자식에게 지우는 것은 노인 세대가 원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자식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폐지를 줍는 것을 선택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노인 세대의 절반이 빈곤하다는 것은 단순히 노인 세대만의 불행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배신하는 일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는가. 좌고우면하지 말자. 답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노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적 노후소득보장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재원이 부족한가. 세금을 더 걷어라. 역사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집단적 배신이 일상화된 사회를 위한 미래는 없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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