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울산, 서부권 개발 동력 잃어… 도시개발계획 새로 짤 판]
KTX 타러 태화강역 가는 시대 도래
동해남부선 타고 신경주역에서 환승
KTX울산역 위축… 역세권 개발 ‘악재’
정책실패의 책임은 지난 지방정부에
부산~울산~포항을 동시 생활권으로 변화시킬 동해남부선 광역전철시대의 개막은 도시 간 이동 확대로 빚어질 경제적 명암 말고도 심각한 도시 문제를 촉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울산은 도시 전반의 개발전략을 새로 짜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판단했던 KTX울산역이 광역전철 시대의 개막으로 이용객이 급감, 간이역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KTX울산역은 울산시의 야심 찬 서부권개발의 핵심동력으로, 간이역으로 전락할 경우 서부권 개발 전체가 흔들릴 공산이 높은데 따른 것이다.
애초 정부(국토교통부)는 울산에 KTX 정차역을 건설할 계획이 없었다. 인근 경주(신경주역)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었다. 실제 KTX 경부선 열차를 타보면 KTX신경주역과 울산역 사이의 시간거리는 불과 5~6분에 불과하다. 국가 철도의 근간이자 초고속 열차인 KTX 정차역 구간을 이렇게 짧은 시간거리로 쪼갠다는 것은 넌센스로 여겨졌지만, 2002년 12월 치러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KTX울산역 유치가 대통령 후보의 지역 공약으로 나와 선거전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급기야 시민 서명운동으로까지 번져 ‘KTX울산역 유치=울산발전의 새 동력’이란 상징이 돼 버렸다. 당시 지역의 유력 정치인이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도 여기에 큰 힘을 보탰다. 시 교통과 직원들을 대동해 상경, 관계 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폭탄주까지 돌려가며 설득한 일화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향후 복선전철화할 동해남부선을 신경주역과 연결, 울산시민들은 태화강역(당시 울산역)에서 서울행 KTX 티켓을 끊어 동해남부선 열차를 타면 2개 정거장(송정-입실역)을 거쳐 신경주역에서 환승, KTX열차를 탈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별도의 역사를 지을 필요가 없는데다, 울산 도심에서 바로 열차에 오르는 만큼 접근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 완공 시점이 먼 타임 레그(시간 지체)가 문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시점이 1년 여 이내로 도래하게 된 것이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가 완성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울산 동구와 북구, 남구, 중구 주민들은 앞으론 KTX를 타러 태화강역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동구와 북구 주민들은 멀게는 1시간 이상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KTX울산역 찾아야 했던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남구와 중구 주민들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울주군 언양권 보다 가까운 거리라면 태화강역을 찾는 게 시간ㆍ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차비를 더 주고 KTX울산역으로 둘러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울주군 동부권의 남창, 덕하 주민들도 인근 동해남부선을 타고 4~5개 정거장을 거쳐 신경주역에서 환승하는 게 훨씬 편리해진다.
결국 가까운 미래 KTX울산역은 울주군 언양, 천상, 범서 등 서부권 주민들만 이용하는 초라한 간이역 수준으로 전락할 게 뻔하다. 시민의 교통편 선택을 ‘애향심’으로 호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KTX울산역의 몰락은 지지부진한 KTX울산역 역세권 개발의 악재 중 악재다. 서부권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을 생각했던 유인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찾지 않을 역세권에 기업의 투자를 바란다는 것도 어리석은 판단이다.
그렇다면 울산시는 이런 미래를 몰랐을까? 물론 알았다. 그 동안 울산시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복합쇼핑타운 건설 등 기업유치에 공을 들였지만 저마다 역세권 투자를 주저했다. 울산역의 미래를 알았기 때문이다. 당초 국ㆍ시비 매칭(지자체가 일정 비율의 사업비를 내야 국비가 나오는)으로 건설해온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의 울산구간 공사의 진척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울산시가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부산은 벌써 공사를 끝내고 울산구간의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울산시는 KTX울산역의 유인효과를 기회로 언양 등 서부권을 발전시킨다며 역세권 개발의 판을 키웠지만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인효과가 사라진다면 자급자족형 도시로 타운을 개발하는 게 맞는 방향이지만, 이럴 경우 계획 자체를 고민하고 다시 판을 짜야 하는 등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상당기간 ‘애물단지’라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 실제 롯데그룹은 울산시의 서부권개발 드라이버에 밀려 KTX울산역 복합환승센터 개발에 끌려 다니다 급기야 개발포기의사를 드러냈다. 최근 KTX울산역 복합환승센터 사업주체인 울산롯데개발은 환승센터에서 아웃렛, 영화관, 쇼핑몰을 빼거나 축소하고 주상복합아파트를 넣겠다는 내용의 설계변경을 울산시에 제시했다. 지난 2015년 사업에 뛰어든 롯데는 동해남부선 개통으로 승객을 동해남부선 태화강역~KTX신경주역에 뺏기게 되자 복합쇼핑몰 형태는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KTX울산역세권 개발사업의 선도사업인 복합환승센터는 울산역 앞 7만5,480㎡ 부지에 연면적 18만1,969㎡에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주차대수 3,135면과 아웃렛, 영화관, 쇼핑몰을 갖출 예정이었다. 울산 서부권의 개발 촉진과 동남권의 광역교통중심지 역할을 기대하며 파격적인 가격에 해당 부지를 넘겼던 울산시로서는 롯데그룹의 땅투기에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물론 정책실패의 책임은 지난 지방정부에 있다. 용지 분양이 더디게 진행되는 등 역세권 개발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울산시가 부담해온 이자부담은 천문학적이며, 이는 결국 예산 낭비로 귀결된 행정실패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원인을 찾는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당시 시정을 이끈 리더십의 판단 착오다.
한편 울산시는 지난달 24일 부산에서 열린 최기주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태화강역 일원을 복합환승시설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복합환승시설로 인정되면 사업비의 50%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고 트램 등 다양한 교통체계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시설 확충이 가능해진다. 또 태화강역과 함께 조성되는 송정역도 복합환승시설로 인정해주고 동해남부선의 연장 운행을 요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목상균 기자 sgm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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