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가난한 예멘인들을 상대로 대규모 불법 장기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예멘 외교관들이 자국민이 장기매매에 희생되는 상황을 도왔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7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방송은 지난 2014년 예멘과 이집트에서 벌어진 국제 장기밀매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집트 병원들은 예멘을 신장 등 주요 장기 공급처로 삼았다. 예멘에는 장기 판매를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기꺼이 장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예멘인들은 신장 하나를 떼주는 대가로 5,000달러(약 584만원)를 받고 이집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전으로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엄습하기 전이었지만, 당시에도 예멘은 인구 절반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는 중동 최빈국이었다.
장기밀매는 브로커들이 예멘에서 장기 기증자를 확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브로커 중 상당수는 이미 신장을 이집트에 판매한 사람들이었으며 주변 지인들에게 같은 행위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수수료 1,000달러를 챙겼다. 예멘인신매매근절기구(YOCHT)의 나빌 알파딜은 지난해 양국 간 장기밀매 실태에 대한 인터뷰 도중 “우리가 인터뷰했던 1,000여명 중 900명이 장기를 팔았는데, 이들은 다시 예멘으로 돌아와 새로운 피해자를 찾았다”고 했다. YOCHT는 이러한 방식으로 예멘인 수만 명이 이집트에서 장기를 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증자 섭외가 완료되면 공공병원과 개인병원을 망라하고 이집트 곳곳에서 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그 중 한 곳은 ‘무카바라트(비밀경찰) 병원’으로 불리는 카이로의 와디 엘닐 병원이었는데, 다른 병원들과 달리 지금껏 장기밀매 혐의로 단 한 명도 체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알자지라에 “이집트 법 상 환자와 기증자 모두 예멘인이면 합법”이라며 “대사관이 발급한 여권과 장기기증 승인이 있으면 된다”고 해명했다. 예멘인의 신장을 예멘인에게 이식했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병원 측 주장과 달리 알자지라가 만난 브로커와 장기 판매자 다수는 이 병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국인 환자에게 신장이 이식됐다고 증언했다. 무카바라트 병원에서 이식 수술을 한 예멘인은 “그들이 신장이 필요한 아랍에미리트 여성을 구해와 우린 혈액 및 조직 검사를 했고, 수술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난 곧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브로커들은 ‘불법’인 외국인 상대 장기밀매가 ‘합법’인 예멘인 상대 장기매매로 둔갑할 수 있었던 건 주이집트 예멘 대사관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브로커는 알자지라에 “장기 판매를 기다리는 사람이 15~20명 정도 있었는데 대사관이 갑자기 이를 막았다”며 “내가 계약을 맺어 한 건 당 8만예멘리알(약 37만원)을 지급하자, 대사관 측이 외교부에서 서명을 받아줬다”고 했다. 이집트 측 브로커 역시 “솔직히 우리 업무는 예멘 정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유일한 일은 이집트 보건부와 법원이 요구하는 서류가 완료된 뒤에 의료 당국에 알리는 것 뿐”이라며 장기매매에 그 이상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