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당시 합수부 폭행에도 비밀조직 끝까지 안 밝혀” 강조
심재철, 유시민 진술서 공개하며 “진실 왜곡 예능의 재능 발휘”
서울대 선후배들도 한마디씩 하며 유시민의 손 들어줘
1980년 ‘서울의 봄’이 2019년 다시 회자 중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해 유신체제가 끝난 직후부터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가 선포되기까지의 과도기를 말한다. 서울의 봄이 정치권에 재소환된 것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KBS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 출연을 계기로,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 이사장이 정반대 주장을 펼치면서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유 이사장은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사여서 이슈의 파급력은 컸다. 여기에 당시 운동권 선후배들까지 공방에 가세하면서 서울의 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1980년 민주화운동 과정도 재조명받고 있다.
◇1980년 5월, 엇갈린 기억
심 의원과 유 이사장은 39년 전에는 동지였다. 1980년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다니던 심 의원은 총학생회장이었고 경제학과 소속 유 이사장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서울대 학생회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고, 비밀조직인 농법학회 소속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의 운명이 갈라진 분수령은 서울의 봄이 끝나고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1980년 5월 17일 계엄군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구타당하던 때를 떠올리며 “진술서를 쓰면 안 때려서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면서 “최대한 상세하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누구를 붙잡는 데 필요한 정보는 노출 안 시키고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걸로 다 썼다”고 말했다. ‘어떻게 작가로서의 재능을 찾게 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설명이었다.
이에 심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유 이사장의 진술서를 일부 공개하고 “유 이사장이 진실을 왜곡하는 예능의 재능을 발휘했다”면서 “당시 유시민 진술서에 언급된 77명 중 미체포자 18명이 6월 17일에 지명수배됐고, 이 중 체포된 복학생 중 일부는 이해찬에 대한 공소사실의 중요 증거가 됐다”고 정반대 주장을 폈다.
그러자 유 이사장은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진술서 작성 뒤)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저희 비밀조직 구성원은 단 1명도 그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진술서는 앞부분부터 다 거짓말이다”며 “학내 비밀조직 배후를 언급하지 않기 위해 합수부 수사관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도록 허위 진술한 것”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누가 동료를 위험에 빠뜨렸나
두 사람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같은 시기 서울대를 다녔던 선배와 동기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 의원과 서울대 77학번 동기인 유기홍 전 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시 유시민은 모든 일을 밖으로 드러나 있던 공개 지도부로 돌리고 비공개 지도부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고 공개적으로 유 이사장을 옹호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비밀조직 ‘무림’의 일원으로 당시 두 사람이 총학생회장과 대의원회 의장으로 선출되는 선거관리를 맡았다. 유 전 의원은 8일 본보 통화에서도 “당시 학생 운동은 심재철이 학생회장으로 있는 공개 지도부와 ‘언더서클’이라고 불렸던 비공개 지도부를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잡혀가는 사람은 비밀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 지도부를 거론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며 “유시민이 조사 과정에서 학생회의 상징적 존재인 심재철을 실토한 것을 배신이라고 한 것은 넌센스”라고 일갈했다. 77학번 동기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진술서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유시민의 진술서가 수사 초기 신군부의 눈과 귀를 밝혀준 셈’이라는 심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유시민의 강제타술서에서 마뜩찮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 고문의 정황 증거이지 그가 밀고자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들은 변절한 것은 심 의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무림의 일원이었던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심재철의 증언이 이해찬 등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엮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라며 “이후 행보를 봐도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있지 않나”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인 심 의원이 MBC 기자로 입사하고 이후 보수정당 계열인 신한국당으로 정치에 입문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81학번 출신인 민주당 사무총장 윤호중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유죄판결에 있어 핵심 법정 증언이 바로 형(심 의원)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서는 심 의원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수사, 재판 과정에서 동지들을 배신한 진술을 했고 결국 핵심 증거로 채택돼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됐다는 게 정설로 인식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을 같이 당한 처지를 감안해 이 같은 사실을 쉬쉬하고 있다가 심 의원이 뒤늦게 유 이사장의 배신 논란을 제기하자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시 고려대 복학생으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설훈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판이 진행되던 육군본부 법정에서 피고인 대부분은 자신들의 자백을 부인했지만 유일하게 심 의원만 공소사실을 인정했다”면서 “심 의원의 진술이 신군부가 김대중과 학생 지도부 사이의 연결고리를 맞추는 핵심 ‘키’ 역할을 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심 의원은 “학생운동의 순수성을 피력하고 김대중씨 등 정치권의 개입이 없었음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이 같은 진술은 공판에서도 유지됐다”고 강하게 반박해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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