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다루고 있는 대법원 선고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다. 삼성바이오 측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분식회계 관련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 등에 출연해 “무죄를 만들어주기 위한 대법원의 심리가 진행되는 거지 진실을 밝히고 사법정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은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앞서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아 풀려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최순실 측에 건넨 금품 상당수를 뇌물로 인정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사실상 간주하고 뇌물 공여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 판결의 주요 토대는 금품이 전달된 2015년 전후 시점에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현안’이 없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룹의 핵심 조직인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이 이 부회장을 후계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정치권에 뇌물을 주면서까지 로비를 벌여 승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는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논란으로부터 이어진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이 부회장의 방어 전선에도 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최근의 수사 내용들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 지배권을 높이기 위해 진행한 계열사 간 인수 합병 과정에서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일에는 검찰이 삼성바이오의 공장 마룻바닥 아래에 감춰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압수했다는 영화 같은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가장 중요한 고리인 삼성바이오의 사기회계 사건에 대한 증거가 쏟아져 나오고, 여기에 삼성 그룹 차원에서의 지시, 그리고 조작과 관련된 지시, (증거) 은폐 지시, 이런 것들이 다 확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가 끝난 다음에 대법원에서 판결을 하는 것이 맞다”며 “(판결 일이 임박하면) 그 때 가선 돌이킬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심리 중인 이 부회장 재판은 23일 5번째 심리가 예정돼 있다. 통상적인 전원합의체 심리보다 주기가 빠른 편이어서 법조계에서는 선고가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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