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죠…. 솔직히 몸싸움, 고성, 욕설의 선두에 우리 보좌진이 있는데, 나중에 ‘몸빵’한 우리만 수사나 재판받고 빨간 줄 생길까봐 가족들은 매일같이 걱정합니다…. 모쪼록 영감님들이 우리를 생각한다면 정치력을 보여주세요. 정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좌진 뒤에 숨는 몸싸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지난달 말 선거법 개혁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여야가 최악의 ‘동물국회’를 연출하는 동안 국회의원 보좌ㆍ비서진들이 이용하는 익명 SNS 게시판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숱하게 올라 왔다.
□ 실제 1주일 가까이 이어진 패스트트랙 전쟁의 최일선은 늘 그래왔듯이 당직자와 보좌진 몫이었다. 회의장 앞 농성은 물론 언제든 투입될 준비를 갖춘 ‘5분 대기조’도 대부분 이들이다. 싸움판을 만든 의원들은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드러눕거나 ‘영감’ 행세하며 뒷짐을 지기 일쑤다. 폭력 등 문제가 생기면 애꿎게 동원된 보좌진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구조다. 박지원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2011년 4대강 예산 저지에 동원됐다가 4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사례를 소개한 것도 보좌진들의 ‘총알받이’ 푸념에 힘을 실었다.
□ 이런 원성을 의식한 탓인지 이번에는 의원들이 소속 보좌관에게 “너무 앞장섰어. 조심해”라고 당부하거나 보좌관협의회 이름으로 “절대 몸싸움하거나 앞장서지 말라”는 쪽지가 나돌기도 했다. 급기야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인 박주현 의원은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일명 ‘총알받이 방지법’을 발의했다. 국회법에 ‘의원은 국회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보좌진과 당직자 등의 물리력을 교사하거나 동원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위반한 의원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 6일 현재 국회법(회의 방해, 불법 감금)과 형법(특수공무집행방해), 폭력처벌법 등으로 여야가 검찰에 고발한 의원은 100명(중복포함)을 훌쩍 넘었다. 민주당이 3차에 걸쳐 한국당 의원 55명을, 한국당도 3차에 걸쳐 민주당ㆍ정의당 의원 46명을, 정의당은 한국당 의원 40명을 각각 고발했다. 반면 고발된 여야 당직자와 보좌진은 10명 미만이다. 본인들이 몸조심했거나 의원들이 자제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들은 서초동에 불려가고 여의도는 ‘총알받이 방지법’이 지키는 나라, 희극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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