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반대 여론에 2021학년도 모집은 일단 무산
연세대와 고려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들이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인력 육성 계획에 발맞춰 채용조건형 ‘반도체학과’ 설립에 잇따라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가 관련 학과 설립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대학이 특정기업을 위한 직업교육을 하는 게 맞느냐’는 반대 여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 계획에도 계약학과 계획은 빠져, 당초 정부와 기업이 원했던 내년도 신입생 모집은 불가능해졌다.
6일 서울대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 공과대학 내 학사위원회에서는 졸업만 하면 대학과 계약한 기업에 100% 채용이 보장되는 시스템반도체학과 설립을 놓고 논의 중이다. 신석민 서울대 교무처장은 “지난 3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례로 (계약학과를) 제안해 공대에서 검토 중”이라며 “기업들이 모두 학부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설립을 원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학칙을 개정해야 해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은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약학과는 기업 또는 정부가 대학과 학자금과 같은 재정 지원 계약을 체결하고 기업(정부)이 요구하는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과다. 대학과 계약한 곳에 졸업생 전원 취업을 보장하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와 재직자에게 재교육을 시행하도록 하는 ‘재교육형 계약학과’로 나뉜다. 서울대는 학부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설립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데, 한 기업과만 계약한 연세대(삼성전자) 고려대(SK하이닉스)와 달리, 복수의 반도체 기업과 계약을 맺는다는 구상이다.
대학 졸업장이 대기업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이 같은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도가 높다. 기업도 추가 교육이 필요 없는 ‘우수 인재’를 선점해 가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구직자와 일자리간 ‘미스 매칭’을 고민하는 정부도 빠르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력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계약학과의 강점으로 꼽는다. 엄중흠 교육부 교육일자리총괄과 사무관은 “계약학과는 별도 정원인데다, 대학 내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아 유연하게 운영이 가능하다”며 “특히 공학계열의 경우 대학이 산업체와 담을 허물고 현장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학이 기업의 ‘인력 양성소’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도 나온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전국교수노조 대외협력위원장)는 “‘창의적 공학인’ ‘상상력 있는 공학자’가 필요한 시대에 대학교 4년 내내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목적의 직장인 양성 교육을 하겠다는 발상이 미래가치와 부합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그만큼 삼성전자 입사 가능성이 줄어든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합리적인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국 대학에 설치된 830개(2016년 기준) 계약학과 중 학부에 설치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가 성균관대(반도체시스템공학과), 경북대(모바일공학과) 등 10곳 내외에 불과한 것도 이런 사회적 우려 탓이다.
서울대 공대 내부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계약학과 설치에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가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고 있는데, 학부에서 특정 기업이나 산업체를 위한 직업교육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견이 있다”며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는 몇 년 전 이런 우려를 고려해 학칙에 ‘대학원’ 내 ‘재교육형 계약학과’만 가능하도록 규정해 놓은 상태다. 학칙을 개정하려면 학내 여러 위원회와 교수평의회까지 거쳐야 해, 서울대 최초 계약학과가 실제로 신설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할 전망이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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