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도둑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ㆍ암로) 멕시코 대통령의 선언을 두고 정치적 위기 모면용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멕시코 내 석유 절도는 마약 카르텔까지 얽혀 있어 이미 산업화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데도 암로 대통령이 취임 5개월 만에 직면한 퇴진 압력을 무마하려고 서둘러 자신의 치적으로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암로 대통령이 “우리는 기름 도둑을 패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암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부터 석유 절도를 막기 위해 주요 송유관 6개의 가동을 중단하고 대규모 군 병력을 투입하는 등의 강경책을 편 결과 4개월 만에 피해 규모가 95%나 감소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멕시코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암로 대통령 취임 당시 하루 평균 1,287만400ℓ에서 지난달엔 63만6,000ℓ로 급감했다.
하지만 멕시코 국민들은 암로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정치적 구호로 여긴다고 NYT는 전했다. 암로 대통령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면서도 이런 성과가 계속 이어질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 절도 범죄의 규모가 이미 커질 대로 커졌고 범죄조직들까지 연계돼 있어 정부가 새로운 안보 우선순위를 정해 병력을 이동시키면 기름 범죄는 언제든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석유 절도는 송유관에 구멍을 내거나 저유소ㆍ정유소의 내부 직원과 공모해 빼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연간 피해액이 35억달러(약 4조8,300억원)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멕시코 당국에 따르면 절도 목적으로 송유관에 설치된 불법 수도꼭지는 10년 전만 해도 460여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첫 10개월간 전국에서 1만2,500개 이상 발견됐다. 지난 1월에는 틀라우엘리판에서 기름 도둑이 뚫은 송유관이 폭발해 13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멕시코의 석유 절도에는 마약 카르텔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마약 단속이 강화된 10년 전부터 석유 절도량이 급증한 이유다. 2017년 현지 언론 레포르마는 기름 절도가 빈번한 푸에블라주의 ‘레드 트라이앵글’ 지역을 2개의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심층 보도해 멕시코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약 카르텔은 점조직 형태로 주민들을 고용해 절도ㆍ유통ㆍ판매 역할을 분담시켰고 식료품과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등 사실상의 기업 역할을 했다. 기름 절도가 단순한 범죄 수준을 넘어 일종의 산업이 된 셈이다.
지난 5일 멕시코시티에선 6,000여명이 모여 암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부터는 대선 공약이었던 폭력 근절과 경제 살리기 관련 정책의 이행을 요구하는 비판여론이 비등한 상태다. 최근엔 국내외 평가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낮춘 가운데 정부가 발표한 1분기 경제 성적표도 예상을 한참 밑돌았다.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한 암로 대통령이 섣불리 기름 도둑과의 전쟁 승리를 선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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