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알스 다룬 장편 다큐로 입봉…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 둘까 했는데…”
“10여년간 쉬지 않고 도전해 온 옹알스를 힘껏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배우 차인표(52)가 넌버벌 코미디팀 옹알스를 만나 장편영화 감독이 됐다. 무대를 잃은 코미디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퍼포먼스팀으로 성장하기까지 10여년간 남모르게 흘렸던 땀과 눈물이 차인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차인표는 지난해 1월부터 13개월간 옹알스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고, 신예 감독 전혜림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를 완성했다. 차인표와 전혜림 감독 모두 이 영화가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이달 말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차 감독은 “한 해 장편영화 1,200편이 만들어지고 그중 90편 정도만 극장 개봉을 하는데 이 영화가 그 한 편이 됐다는 사실이 커다란 행운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이 취미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시선이 있을 수 있는 게 당연하다”며 “전주영화제가 나를 연예인이 아니라 영화인으로 받아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도 했다.
옹알스는 2007년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시작됐다. KBS 공채 개그맨인 조수원 조준우 채경선이 주축이 돼 팀이 꾸려졌고, 이후 SBS 공채 개그맨 최기섭을 비롯해 하박 이경섭 최진영이 합류하면서 총 7명이 옹알스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글링과 마임, 비트박스, 마술, 댄스 등으로 구성된 비언어극으로 12년간 21개국 46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한국 코미디언 최초로 서울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무대에 섰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 아시아 아트 어워드 베스트 코미디상과 호주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디렉터 초이스상 수상을 수상했다. 영화 ‘옹알스’는 2017년 12월 영국 웨스트엔드 소호시어터에서 5주 장기 공연을 마친 옹알스 멤버들이 마지막 꿈의 무대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차 감독은 2009년 봉사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옹알스의 자선공연을 봤다. 이후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던 중 2017년 옹알스의 근황이 궁금해 만남을 청했다. 그 자리에서 옹알스가 라스베이거스 진출을 꿈꾼다는 얘기를 들었다. 리더 조수원이 혈액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도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의 눈에는 옹알스 멤버들이 주류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분들은 똘똘 뭉쳐 다른 길을 모색했어요. ‘길은 어디에나 있다’가 옹알스의 모토예요. 그런 옹알스를 보면서 제가 투영됐어요. 1997년에 영화계에 데뷔했지만 최근 몇 년간 상업영화 출연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영화를 하고 싶어서 2016년 영화사를 직접 차렸죠. 옹알스와 제가 서로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는 뜻밖에도 옹알스 멤버들이 지닌 삶의 무게를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세계 무대에서 쌓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놓치지 않는다. “시작은 단순했어요. 옹알스가 ‘도장 깨기’ 하듯 더 큰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으려 했죠.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커다란 삶이 있더군요. 아픈 멤버도 있고 각자 빚을 지고 있었죠.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어요.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 제가 빚쟁이처럼 따라다니면서 도전을 재촉하는 모습도 많이 찍혔더라고요.”
제작 과정에서 숱한 난관에 부딪혔다. 라스베이거스 촬영을 염두에 두고 고용한 미국인 감독이 갑자기 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제작만 맡으려던 했던 차 감독이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됐다. 옹알스의 새 멤버로 추천받은 미국인 스턴트 배우는 실력이 늘지 않아 공연을 함께하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스태프 계약 기간이 끝나 차 감독과 전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만둘까 고민했어요. 옹알스 멤버들도 영화가 진짜 만들어지기는 할까 반신반의했다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개봉까지 하게 됐네요.”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차 감독은 조수원을 떠올렸다. “미국인 감독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촬영을 중단해야 하나 밤새 고민했어요. 포기가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문득 조수원씨가 생각나더군요. 영화를 찍기로 했을 때 그가 가장 기뻐했어요. 암환자에겐 웃음이 가장 좋은 치료제예요. 그 웃음을 배반할 수 없었어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제 동생도 생각났고요. 물론 투자배급사에 물어줘야 할 돈도 한 가지 이유였죠(웃음).”
차 감독과 전 감독은 2014년 전규환 감독의 영화 ‘마마보이’를 촬영하면서 배우와 연출부 스태프로 처음 만났다. 이후 차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 ‘50’에서 전 감독이 조연출을 맡았고, ‘옹알스’에도 현장 편집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공동 연출을 맡게 됐다. 전 감독은 “차 감독님이 신인 영화인인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 공동 연출자로 존중해 줬다”며 “옹알스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꿈을 어떻게 지켜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차 감독이 각본, 제작, 주연을 맡고 전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샤또 몬테’도 올해 전주영화제에 초청됐다.
차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특히 사람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되겠구나 깨달았다”고 껄껄 웃었다. 아울러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옹알스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며 “이 영화가 작은 무대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옹알스’ 이후로도 제작자, 작가, 감독 차인표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고, 차 감독이 쓴 소설 ‘잘가요 언덕’은 한 대형 제작사에서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8월에는 배우로 단편영화에 참여한다. “대형 상업영화도 좋지만 작은 영화에서 얻는 행복감도 무척 커요.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전주=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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