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파츠파츠 랩을 연 임선옥 디자이너가 2013년 디자인한 옷 표본을 들고 있다. 그는 과거 패턴 규격을 활용해 부품처럼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폐원단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왔다. 홍인기 기자

“우리가 만드는 옷이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데 계속 만들어야 할까요?”

환경운동가의 반문이 아니다. 22년째 패션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임선옥(57) 파츠파츠(PARTsPARTs) 대표의 언급이다. 임 대표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디자인실 겸 패션 실험실인 파츠파츠 랩(PARTsPARTs-lab)을 열었다. 파츠파츠 랩은 국내 패션업계 최초로 디자인실을 공개하고 있다. 재료 선정부터 디자인, 실물 제작까지 옷 만드는 전 과정을 알 수 있다. 디자인실 공개 이유를 묻자 그는 패션디자이너답지 않은, 앞의 말을 했다.

1998년 서울컬렉션에서 데뷔한 임 대표는 IMSEONOC(2003)과 파츠파츠(2011) 등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실험적인 패션을 선보여 온 중견 디자이너이다. 파츠파츠 랩은 그의 실험 정신이 발현될 새 요람이다. 임 대표는 “어떻게 하면 예쁜 옷을 만들지 고민하기보다 옷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자투리 천 등 옷을 만들면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지, 옷을 오래 입는 법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연구하기 위해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만 연구하기보다 모든 이들이 체험하고, 고민하고, 함께 공유하는 패션계의 ‘위워크(공유 오피스)’ 같은 곳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파츠파츠 랩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천은 방문객에게 제공한다. 임 대표는 ‘길이 90㎝ 천으로 자투리 없이 제품을 만드는 법’ 등과 같은 친환경 의류 제작 교육을 비롯해 관련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임 대표의 행보는 2010년대 패션업계를 지배해 온 패스트 패션(유행에 맞춰 옷을 대량 생산하고 재빨리 유통시킨 후 빠르게 소비시키는 것) 경향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그는 “디올과 샤넬 시대에서는 기능적으로 충분하면서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운 실험이 주를 이뤘다”며 “하지만 이제 기능과 아름다움이 모두 만족할 만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옷보다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1년 ‘제로 웨이스트’를 선언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탐구해온 임선옥 디자이너는 검은 선글라스에 블랙 의상을 주로 입는다. 그는 “개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유니폼 같은 의상이 더 각광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임 대표는 패션 브랜드 파츠파츠를 만들면서 지속 가능한 패션을 탐구해 왔다. 그는 “패션 사이클이 굉장히 빠르고 소비적으로 돌아가는 데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이렇게 계속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답을 찾다가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자는 의미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를 내세운 파츠파츠를 만들었다.” 파츠파츠는 등산복 바지 소재에서 착안한 특수소재 네오프렌만을 사용하고 패턴 규격을 통일했다. 원단을 봉제하지 않고 풀로 붙이는 접착 방식을 쓰기도 한다. 이런 제작 방식으로 폐원단 발생률을 0에 가깝게 줄였다. 단일 소재인데다 자유자재로 붙여 쓸 수 있어 재고도 거의 없다. 겨울 옷 재고가 생기면 길이를 조절해 여름 옷으로 만들거나 가방 등의 제품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문을 연 임선옥 디자이너의 파츠파츠 랩(PARTsPARTs-Lab)은 패션업계 최초로 디자인실을 공개했다. 파츠파츠 제공
서울 종로구 부암동 파츠파츠 랩(PARTsPARTs-Lab)에는 가방 펜던트나 키링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투리천이 매달려 있다. 파츠파츠 제공

소재가 가볍고 관리가 편한데다 독특한 디자인까지 갖춘 파츠파츠는 빠르게 성장했다. 대형 패션업체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고, 백화점 진출 요청도 받았다. 하지만 확장은커녕 국내 매장은 두 곳에 불과하다. 임 대표는 “백화점에 입점하면 고객들이 ‘이번 시즌 신상은 뭐야?’라며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요구할 텐데 그런 요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정 매출이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려면 작아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단순한 소비가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패션을 추구한다. 그는 “옷을 만드는 데만 골몰하다 보면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는 소홀해진다”고 본다. “얼마나 많은 옷이 버려지는지, 어떤 소재가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지, 버려진 옷을 자원으로 수거해서 어떻게 재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디자이너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임 대표는 앞으로 패션은 개성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는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유니클로, 자라 등 패스트 패션 덕분에 누구나 비용에 상관없이 유행에 맞춰 옷을 갖춰 입게 됐다”며 “하지만 개성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그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나는 이것만 입을래’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유니폼’ 같은 옷이 더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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