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북아현 재정비구역
“살던 사람들만 불쌍하죠 뭐.”
6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옛 뉴타운)내 북아현3재정비촉진구역 내 한 상가. 28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정모(61)씨는 북아현 재개발 이야기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씨는 여기서 아이들을 키우고 수많은 손님들과 정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젠 정을 떼는 중이다. “온 동네가 재정비구역으로 묶인 뒤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10년 넘게 지켜봤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뒤편 언덕 위에 올라서니 지붕이 부서지거나 외벽에 금이 쩍 가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예 바닥이 내려앉은 집, 불에 탄 상태 그대로 방치된 흉가 같은 빈집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병풍을 두르듯 경쟁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 풍경이었다.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자리 잡은 북아현3구역은 ‘가장 말 많은’ 뉴타운 재정비구역 중 하나이자 뉴타운 열풍의 그림자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꼽힌다.
이 지역은 2009년 사업시행 인가 뒤 10년째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이유는 조합 안팎에서 이어진 비리와 갈등이다. 옛 서대문구청장이 재정비구역 확장과 관련해 2015년 금품수수로 실형을 선고 받은 게 시작이었다. 애초 재개발이 거론된 건 현재 낡은 집과 빈집들이 방치된 충정로 일대인데, 신축 단독주택이 많았던 주변 지역까지 북아현3구역으로 함께 묶인 것이다. 당연히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 간 갈등이 깊어졌다. 재개발 찬성, 조합장 지지 여부 등으로 나뉘어 매번 반목했다.
여기에 조합장들은 잇따라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각종 용역 대가로 업체에서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초대 조합장은 2015년 징역형을 받았다. 다음 조합장 역시 추진위원회 감사 시절 철거업자에게 뇌물을 받아 지난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새 조합장이 선출됐다. 이제 뭔가 되려나 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소ㆍ고발이 이어졌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새 조합장 선출 과정에서 관련 문서 위조 정황이 발견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조합 측은 “정상적으로 선거를 치렀고 이제야 조합을 정상화시키려 하는데 반대 세력이 물고 늘어지며 총회를 앞두고 혼란만 가중시킨다”며 맞서고 있다.
이런저런 잡음이 있어도 ‘그래도 언젠간 재개발이 되겠지’란 생각으로 버텨온 원주민들은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동네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서다. 10년간 재개발이 미뤄지면서 향후 추가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원주민들은 동네를 떠났다. 세입자들은 비 새는 천장과 녹슨 배관 등을 원망하다 떠났다. 그저 개발이익만 바라보고 있는 외부 투자자들은 세입자가 없으면 빈집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뒀다. 이 때문에 이제 동네에 남은 이들 대부분은 옮겨갈 곳조차 마땅치 않은 고령자들뿐이다. 3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세입자 이모(73)씨는 “임대주택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희망에 버티고 있다”며 “지금 사는 집의 주춧돌에 금이 갔는데 수리를 요구하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원활한 재개발 사업을 위해 우선적으로 조합 임원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한 예다. 이 법은 조합 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조합원들이 동의하면 전문조합관리인 선정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처음부터 수요자 중심이 아닌 거주자 중심으로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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