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진을 찍으러 간다’ 사진관의 화려한 부활 
셀프 사진관 '포토매틱'에서 촬영한 방송인 노홍철. 포토매틱 제공

전송화(31) 김호연(30) 커플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사진관 ‘포토매틱’에서 직접 커플 사진을 찍었다. 1년 전 문을 연 이 곳은 사진사 없이 리모컨 버튼을 눌러 자기 스스로 찍는 사진관이다.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셀프 촬영한 사진을 보고 이 사진관을 알게 됐다고 했다.촬영을 마친 두 사람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촬영을 즐길 수 있었다”며 “자연스러운 우리 모습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긴 듯하고,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관에서 느꼈던 행복감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 증명사진도 혼자 찍었다는 홍승현(36) 포토매틱 대표는 “반려동물 전문 사진관인 땡큐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중 젊은 층을 대상으로 셀프 사진관을 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차리게 됐다”며 “친구나 가족,연인끼리 와서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부분 즐겁게 촬영을 하고 결과물도 무척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말했다.

 ◇사진관이 부활하고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로 전문가 못지않게 고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동네 곳곳마다 있던 사진관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일반적인 증명사진이나 전통적인 방식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기도 하지만, 혼자서 또는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색다른 사진을 찍고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사진관은 단순히 사진만을 찍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곳이자 이벤트와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 됐다.

사진관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는 건 수치로도 드러난다.통계청에 따르면 ‘사진촬영 및 처리업’ 업체 수는 1999년을 전후로 1만3,000여곳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세를 나타내다 2011년 8,599곳으로 바닥을 찍고 나선 다시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김정대 한국프로사진협회 교육위원장은 “사진은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 받는 듯하다”며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찍는 사진관이 많이 늘었고 필름 전문 사진관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김민정씨 가족이 글래머샷에서 촬영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뒤 글래머샷의 세 대표가 이미지 합성 등 작업을 추가했다. 김민정씨 제공

사진을 찍는 과정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패션 전문 사진가인 김연중(33), 전시 기획자 한대웅(29),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25)씨가 함께 운영하는 ‘글래머샷’은 사진관에서 찍은 것과 가상의 이미지를 합성해 사진을 만드는 곳이다.지난해 말 시작했는데 재미있고 개성 넘치는 사진으로 인해 SNS를 통해 금세 유명해졌다.인스타그램으로 주문을 받아 고객과 전체 콘셉트를 의논한 뒤 스튜디오를 빌려 촬영하고 후반작업을 거쳐 최종 사진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평범하지 않은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김민정(26)씨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이 1,000장이 넘지만 전문가가 찍은 사진을 갖고 싶어 사진관을 찾다가 글래머샷에서 찍게 됐다”며 “반려동물과 함께 찍을 수 있는 것도 좋았는데 촬영과정도 너무 즐거웠고 최종 결과물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성 있는 사진들은 주로 SNS를 통해 공유된다. SNS의 대중화가 사진관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김연중 대표는 “요즘엔 혼자 보관하기 위해 찍는 사진이 많지 않고 대부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공유하려고 찍는다”며 “그래서 우리 사진이 관심을 끌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진관 '망우삼림'에 필름이 걸려 있다. 이한호 기자

사진관은 때로 사진이라는 취미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사진작가 윤병주(35)씨가 서울 을지로3가에서 운영하는 ‘망우삼림’은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내부가 인상적인 곳으로 촬영과 필름 현상을 겸한다.지난 2일 찾은 이곳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필름 현상을 맡기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손님들은 대학 동아리에 드나들 듯 윤병주 대표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망우삼림에 필름 현상을 맡기러 왔다는 20대여성은 “필름 특유의 질감이나 노이즈가 좋아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며 “SNS에 망우삼림을 태그로 붙여 사진을 올린 사람과 여기에서 만나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특별한 흑백 필름 사진 

21세기 사진관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한 축은 아날로그 흑백사진이다.디지털 사진이 흔해지면서 땀과 노력이 깃든 아날로그와 작가주의가 다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 것이다.서울에선 등대사진관,물나무사진관,연희동사진관이 대표적인 흑백사진관으로 꼽힌다.물나무사진관은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문을 연 곳이다.사진기자 출신인 김현식 대표가 2011년 서울 종로구 계동에 문을 연 물나무사진관은 즉석 사진인 폴라로이드 사진(제품 단종으로 지난해 말 종료)과 사진사 없이 혼자 촬영하는 자화상 사진,한지 인화로 유명세를 탔다.

김 대표는 촬영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한국적 초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진관을 열었다고 한다.그는 “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분들께 최대한 사진 찍는 환경을 잊게 만들어 ‘가장 나다운 모습’이 나오게 한 뒤 셔터를 누른다”고 말했다.

물나무사진관에서 촬영한 가수 겸 배우 아이유. 물나무사진관 제공

자화상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인 혼자 사진 찍는 프로그램은 ‘객관화된 관점’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것이다.스튜디오에 혼자 들어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다. 고객 20명 중 한 명꼴일 만큼 자화상을 찍는 이가 많진 않지만, 혼자 사진을 찍고 나선 상당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온다고 한다.국립국악원 정악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이웅씨는 “최근 이 곳에서 자화상을 찍었는데 자신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꼭 한번은 해볼 필요가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물나무사진관은 특수 한지에 비은염 방식으로 인화한 사진으로도 유명하다.물나무사진관에서 결혼사진을 찍고 한지로 인화했다는 김도관씨는 “일반 웨딩 촬영과 달리 나만의 사진을 갖고 싶었다”며 “한지에 인화된 사진을 처음 받고 너무 멋있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희동사진관'을 찾은 예비 부부가 연희동사진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연희동사진관도 즉석 폴라로이드 사진과 흑백 필름 사진으로 유명한 곳이다.주말이면 늘 즉석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30분~1시간 촬영하는 필름 촬영도 예약이 찬다.고전적이면서 세련된 사진관 외관을 배경으로 찍는 기념사진은 블로그나 SNS용으로 인기다.

중학생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김규현(32) 대표는 웨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2015년 흑백 전문 연희동사진관을 열었다.그는 “웨딩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사진을 찍는 데 신중함도 없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진 중에 고르는 일도 힘들었다”며 “디지털 시대에 내가 잘할 수 있는 흑백 사진을 젊은 층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해서 사진관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단순히 SNS에 사진을 올려 남들에게 보여주기보다 자신만의 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관에 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2일 이 곳에서 결혼사진을 찍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방영배(37) 박길영(29) 씨는 “연희동사진관에서 몇 번 촬영하며 김 대표와 친해졌는데 결혼사진은 심적인 부분도 중요해서 편하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곳으로 오게 됐다”며 “의상 준비부터 촬영까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세기 폴라로이드’ 습판사진 

지난해 12월 결혼한 신정희(33) 황정한(34) 씨 부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한 달 보름 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서울 용산의 등대사진관으로 향했다. 15㎏가 넘는 무거운 가방을 지고 검게 그을린 피부와긴 여정의 피로를 고스란히 흑백 ‘습판사진’에 담았다.습판사진은 철판 위에 유제를 발라 마르기 전에 촬영하는 19세기 방식 사진이다.철판이 필름과 인화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데, 촬영 후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19세기 폴라로이드’라고도 불린다.콘트라스트가 강하고 다소 어두운데다 사실상 보정이 불가능해, 실제보다 더 예쁘게 가공해 만들어내는 요즘 디지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신정희 황정한 부부가 서울 용산의 습판전문 사진관 등대사진관에서 결혼식 전(왼쪽), 신혼여행 후 찍은 사진들. 신씨는 "디지털로 언제든지 수정하고 보정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정희씨 제공

신씨 부부는 심지어 결혼사진도 이곳 등대사진관에서 습판사진으로 촬영했다.신씨는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닌,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며 “집에서 사진을 보면 의상 준비부터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네댓 시간 동안 사진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찍었던 기억,산티아고에서 돌아와 공항에서 사진관까지 이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고 말했다.

습판사진은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 필름 카메라로도 따라 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사진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수십년 간 사진을 찍고 연구해온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습판사진은 국내 사진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사진기술이다.조선시대 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습판사진 이후의 사진기법인 건판사진 기법부터 국내에 들어온 탓이다.등대사진관 이창주 이규열 실장은 잡지 화보나 광고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던 두 사진가였으나,디지털 시대에 급속도로 사진 일감이 줄어들자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사진기술에서 해법을 찾았다.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습판사진이야말로 최신식 첨단 기술이었던 셈이다.두 사진가는 2년간 독학으로 습판사진 기술을 터득해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습판사진 전문 사진관을 2015년 열었다.크기에 따라 최고 50만원에 달하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습판사진을 찾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이 낯선 사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서 찾아오는 것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등대사진관 이규열(왼쭉부터) 이창주 실장이 서울 용산구 등대사진관에서 습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호주머니에 가방에 누구나 카메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사진관을 찾는 이유는 뭘까.이창주 실장은 “한 장의 사진을 찍는 데 최소 30분이 걸리는데,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찍었던 경험,그 사진을 위해 이 사진관에 머물렀던 상황이 기억에 남는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놓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진과 달리 오랜 시간 공들여 찍은 사진은 다른 의미를 주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이규열 실장도 “디지털로 수정한 사진은 오랜 시간 지나면 기록으로 가치가 없어진다”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덧붙였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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