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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일본인은 홍길동을 어떻게 '폭도'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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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일본인은 홍길동을 어떻게 '폭도'로 만들었나

입력
2019.05.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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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연합뉴스
홍길동전, 연합뉴스

"홍길동은 온갖 속임수로 교활한 자이다. 단지 빼앗기만 하고 풀어서 주는 것을 모른다."

일본 언론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1886∼1931)는 일본 출판사 자유토구사(自由討究社)가 1921년에 펴낸 '통속조선문고'(通俗朝鮮文庫) 7권에 수록한 글 '홍길동전의 권두에'에서 홍길동을 이같이 평가했다. 한글소설 홍길동전 주인공인 홍길동은 보통 '의적'으로 인식되지만, 호소이는 폭도의 우두머리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상현 부산대 교수는 한국연구원, 한국사상문화학회, 동아시아책문화연구학회, 국립중앙도서관이 지난 3일 개최한 '한국 고전 정전(古典正典)의 재인식: 우리가 몰랐던 홍길동전'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 고소설 번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호소이가 홍길동을 어떻게 폭도로 조명했는지 분석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호소이는 '통속조선문고'에 앞서 1911년 발간된 '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에서도 홍길동전을 일본어로 옮긴 동기에 대해 "폭도 우두머리 강기동과 같이 홍길동전을 외우며 제2의 홍길동을 꿈꾸는 자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황당무계한 서적이 민간의 일부에서 즐겨 읽히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즉 호소이는 1909년부터 1911년 사이에 활발히 활동한 의병장 강기동을 거론하면서 홍길동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 도적이 아니라 체제에 반기를 든 인물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조선문화사론'과 '통속조선문고'에 실린 홍길동전 일본어본을 살펴본 뒤 "일역본의 변개(變改·변경) 양상은 율도국을 류큐국(오키나와)으로 번역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없다"며 "일역본에서 홍길동과 활빈당의 형상은 백성에 해를 입히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빼앗아 빈민을 구제한다는 점에서 홍길동전과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호소이가 홍길동전을 일본어로 옮기면서 활빈당 부문만은 다른 번역 방식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소이는 많은 대사를 축약해 서술했지만, 활빈당 활동 대목에서는 축약된 부분이 유독 적다"며 "폭도 홍길동이라는 형상을 드러내고자 한 호소이의 기획은 원전을 훼손하거나 변개하는 방향이 아니라 활빈당 활동을 충실히 제시하는 방향으로 구현됐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호소이는 홍길동이 형인 홍인형에게 자수하는 장면에서 '원본 몇 장이 누락' 혹은 '몇 장 탈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조선문화사론' 중 활빈당 활동 대목에서는 "길동은 이때 13세에 불과했지만 산적들이 홍길동을 대표로 추대하려는 말투가 빠진다면 극히 부자연스러워지기에 원서 그대로 역술했다"고 별도의 글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서자 신분인 홍길동의 출생과 가출, 이상국가 건설 대목보다 활빈당 활동을 충실히 번역한 데에는 홍길동이 반체제적 폭도임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결론지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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