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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국의 미

입력
2019.05.07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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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외국에서 얼마나 살았냐는 것이다. 아마도 내 소설의 배경이 상당 부분 해외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해외에서 산 경험이 전무하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 여행을 간 것이 전부다. 이렇게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이 온다. 그런데 왜 해외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냐고. 혹자는 사대주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저 하려는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는 배경과 캐릭터를 고른 것뿐이라고. 그런데 사실 내가 외국문물에 익숙해진 데는 나름의 계기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의 미’가 있다.

내가 한국의 미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한 건 대학시절이다. 미대 입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입시미술은 상당 부분 주입식이다. 특히 디자인과 입시는 거의 암기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정해진 석고상을 그려야 하고 구성이라는 시험을 보면 끝이다. 고로 창의력에 관한 고민이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해 미술대학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진 작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독창성이라는 게 마법사 지니가 손가락을 퉁기듯이 간단히 생기는 게 아니다. 일련의 과정과 수련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련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이 모방이다. 세상의 어떤 작가도 모방이라는 과정을 거치치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구축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독창성은 다른 말로 정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체성이란 스스로의 자아만이 아닌, 자라난 과정의 경험과 정서, 문화적인 환경이 결정한다. 그런데 디자인을 공부하던 내게 닥친 가장 혼란스런 문제는 바로 ‘한국의 미’였다. 당시 내가 접할 수 있던 교재와 작품집이 전부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출판된 것들을 번역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모방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선배 작가들이 전부 외국 작가라는 것이다. 한국의 미라고 나와 있던 것은 고작해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 서화나 하회탈 정도였다. 고전 문양 등을 연구한 서적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마저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정리해놓은 수준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예술을 시작한 미술학도에게 거대한 혼란으로 다가왔다. 이 땅에서 모든 시간을 보낸 내가 한국의 미가 뭔지를 전혀 모르겠는 것이다. 문제는 교수님들조차도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하고 대한민국 국전 심사위원인 교수님들도 속 시원한 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혼란은 분노로 바뀌었다. 대체 내 선배들은 이제껏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반만년 역사라고 버젓이 자랑하고 다니면서 ‘한국의 미’ 하나 제대로 정리를 못했단 말인가. 이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한국의 미를 정의 내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한국의 미에 얽매이지 말자고. 한국인 작가가 아닌 세계인 작가가 되자고. 그때부터 나는 입맛에 맞는 문화라면 닥치는 대로 섭렵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제 내가 후배 작가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만약 젊은 시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가 있고 내게 와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솔직히 나도 명확히 대답할 수 없다. 그만큼 문화라는 것은 복잡하고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을 갖고 말해줄 수 있다. 내가 독일인을 주인공으로 잡고 뉴욕을 배경으로 쓴다고 해도 내 소설은 한국적이라는 걸. 왜냐면 내가 지금의 한국이니까.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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