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한 나라ㆍ두 대통령’ 상황을 버티도록 해줬던 언론 장악력이 와해되고 있다. 수 년간의 통제와 ‘인터넷 차단’까지 불사하는 조작에도 불구, 거국적 민심 이반을 노리는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측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선전선동이 먹혀 들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여론이 90%에 육박할 정도인데, 베네수엘라 야권에서는 최후 수단으로 미국에 대한 군사 개입 요청 논의도 나오고 있다.
6일 한국일보가 APㆍ로이터 등 서방 통신매체가 아닌 베네수엘라 현지 스페인어 방송과 일간지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혼란 상황도 정권에 유리하게 보도하고 있다. 정부군과 반정부 세력간 충돌로 4명이나 숨진 지난 3일에도 유력 일간지 ‘울티마스 노티시아스’는 “폭력 시위로 4명이 사망했다. 누가 총격을 가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정부군이 실탄을 발포하고 장갑차를 몰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데타 군이 대량살상용 무기를 사용했다”며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한 기사도 내보냈다.
정부 기관지는 더욱 노골적이다. 전임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 출범한 타블로이드지 ‘코레오 델 오리노코’는 지난달 30일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한 데 이어, 1일자 1면에도 ‘마두로는 미라플로레스(대통령궁)에서 굳건하다’라는 기사를 냈다. 소규모로 열린 친정부 시위를 크게 다루기도 했다. ‘베네솔라나 데 텔레비시온’ 등 국영방송도 마두로 대통령이 2일 군사기지에서 4,500여명 군인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연이어 내보냈다.
반면 정권에 비판적 매체들은 수년간 이어진 강력한 탄압에 지리멸렬이다.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CJR)에 따르면 마두로 정권은 2017년에만 라디오방송 40곳의 문을 닫았으며, 지난해 말에는 ‘베네수엘라의 마지막 반정부 신문’으로 불리는 ‘엘나시오날’ 발행을 중단시켰다. 베네수엘라 전국언론인협회(SNTP)는 지난 3월 정보당국에 붙잡힌 기자 루이스 카를로스를 비롯해 올해에만 언론인 36명 이상이 정부에 감금되거나 추방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베네수엘라는 180개국 중 148위를 기록했다. 최근 5년 간 32단계나 떨어진 순위다.
이런 언론장악에도 불구, 마두로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은 내일 정권이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현지 여론조사기관인 메가날리시스에 따르면 올해 초 13% 초반이던 마두로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6% 수준까지 떨어졌다. 또 다른 기관인 다타날리시스 역시 과이도 의장 지지율이 61%인 반면, 마두로 대통령 지지율은 14%라고 평가했다.
언론 장악이 먹혀 들지 않는 건 국민들도 SNS와 외신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이도 의장 측도 반정부 세력을 규합하고 뉴스를 퍼뜨리는 데 트위터 등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CNN은 반정부 진영의 SNS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영통신사 CANTV를 동원, 한때 트위터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접속을 완전 차단했다고 전했다. 킹스칼리지의 가브리엘 레온 박사는 “마두로 정부는 주요 지지세력인 빈곤층에 정보가 도달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인터넷을 아예 차단하지는 않는 건 독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마두로 정권이 그나마 유지되는 건 과이도 의장 중심의 야권 세력이 정권 전복이 가능할 정도로 확실한 대중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사태 종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군사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 동안 주저하던 과이도 의장도 이에 동조할 뜻을 비추면서 사태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은 5일(현지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베네수엘라 요청으로 개입하게 됐다는 모양새를 만들어 미국을 국제사회 비난 여론에서 보다 자유롭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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