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여남은 살부터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더니만, 건강 생각혀라. 니도 인제 나이가….” 수화기 너머로 엄마 잔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였던 터라 엄마는 교회 행사를 손수 챙길 때가 많았다. 매년 포도 수확 시기가 되면 이듬해 성찬식 때 쓸 포도주를 담그는 일도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포도를 깨끗이 씻고 포도 알갱이를 설탕에 버무려 장독에 담아 마당에 묻었다.
마당에 포도주가 익어가던 어느 겨울 밤을 기억한다. 눈이 소리도 없이 푹푹 내린 듯도 하다. 장독대보다 조금 큰 내가 장독 뚜껑을 열고는 검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광목을 벗겼다. 깜깜한 밤, 장독에 가득 찬 포도주를 온몸으로 느낀 건 운명이었을까. 눈은 안 내리고 둥근 달빛만 숨죽이고 비친 듯도 하다. 장독이 나를 삼키듯, 아니 중국의 영웅호걸처럼 술독에 몸을 담그듯 한껏 고개를 숙여 국자를 장독 속으로 뻗었다. 너무 붉어 외려 검은 액체가 내 몸을 향긋하게 감돌았다. 홀짝일 때마다 술이라 여길 수 없는 엄마의 포도주 맛에 겨울 밤이 달콤하게 녹았다.
포도주를 걸러 병에 담는 날이면 그야말로 대놓고 호사를 누렸다. 이때쯤이면 포도 알갱이는 마지막 폴리페놀(향, 색, 타닌)과 과즙까지 모두 포도즙에 내어주고 껍질만 남는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텅 빈 포도 알갱이를 입술과 혀가 새까매지도록 빨아 먹었다. 알코올 탓이었을까, 달콤함 덕분이었을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듯 우린 서로를 보고 깔깔 웃어댔다.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을 알기 전까진 나에게 포도주는 그저 맛이 달콤한 음료였다.
당시 집에서 만든 포도주는 대부분 리큐어를 만들 때처럼 소주에 포도와 설탕을 넣어 담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포도주는 달고 은근한 술이라고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이라 그랬을까, 엄마는 소주를 안 쓰고 설탕과 포도로만 담그셨지만, 엄마의 포도주 역시 포도주답지 않기는 매일반이었다. 발효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다.
오래 전 어느 날 밤에도 예수가 열두 제자와 둘러앉았으리라. 자신의 살과 피라며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눈 다음 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신교에서는 교회마다 제각각 와인을 담그거나 구매해 성찬식 때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천주교에서는 1977년 9월 로마교황청이 승인한 ‘마주앙 미사주’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흔이 된 엄마는, 그 옛날 당신이 직접 담그시던 성찬식 포도주를 요즘엔 주류 공장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마주앉아” 즐기다 라는 뜻을 가진 마주앙은 노블와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산된 와인이다. 특히 마주앙 미사주는 경상북도 경산에서 재배한 국내산 100% 포도로만 만드는데, 레드와인은 머스캣베일리 A, 화이트와인은 사이벨 품종을 쓴다. 레드와 화이트 비율을 1대 3으로 연간 약 15만병을 생산한다는데, 롯데주류의 홍성원 씨의 말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미사주는 가공하지 않은 순수 포도로만 만들어야 합니다. 농장에서 축성한 뒤 선별한 포도만를 사용하지요. 미사주는 6개월 이상 숙성하여 각 교구청을 통해 각 교구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마주앙 미사주는 화이트와인이 대부분이다. 보통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성찬주는 붉은 포도주를 쓸 것이라 여겼다. (물론, 우리 역사에는 하얀 피를 흘렸다는 순교자 이차돈이 있다.) 그런데 미사주에 색깔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한다. 성작(성찬식 포도주 잔)을 덮는 성작 수건이 보통 하얗다 보니, 붉게 물들지 않는 화이트와인을 선호한다고 한다.
성찬주를 훔쳐 마신 전력이 있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마주앙 미사주를 맛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마주앙 미사주는 일반에는 판매하지 않는단다. 천주교 영세도 받은 적 없으니 마실 자격도 안 되어 대신 OEM방식으로 생산한다는 마주앙 모젤을 사 들고 엄마를 찾았다. “아따, 달달허니 맛나네. 새콤도 허고, 간이 잘 맞는다잉. 내 포도주도 참 맛났는디…. 근디, 어느 해인가 성찬식 앞두고, 네가 포도주를 다 퍼다 마셔서 급허게 포도를 끓여서 물 탔잖냐.” 아무튼, 고요했던 그 겨울 밤 여든까지 간다는 나의 세 살 버릇이 시작됐나 보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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